교양교육연구소 > 학술,출판 > 학술 > [제7회 교양교육 학술심포지엄] 대학의 현재와 미래

▶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소장 이영준 교수)가 주최한 제7회 교양교육 학술심포지엄이 지난 2월 19일 청운관에서 열렸다. "대학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현주소와 문제점, 그 대안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네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아래에는 논문의 주요 내용을 요약정리하였다.

1. 대학구조개혁 평가의 쟁점과 대안적 논의

반상진 (전북대학교)

교육계 내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이슈와 대중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이슈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특히 대중은 초/중등교육분야의 이슈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고등교육분야의 이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면 교육계의 책무는 두 가지인데, 대중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적 이슈를 받아 안아야 하는 것도 있고, 교육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적 이슈에 대해서는 알리고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

대학구조개혁과 같은 정책은 대학교육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역사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슈는 국민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는 이슈에 머물러 버린다. 그래서 교육부는 여론과 관계없이, 사회적 의제로 발전시키지 않더라도 큰 저항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다. 이에 대해 오히려 대학구성원들이 국민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홍보하여 사회적 의제로 발전시켜야 하는 사항이 되었다.

현재의 대학구조개혁은 지향하는 이념, 목표, 추진전략 등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고, 이러한 축소지향의 기능적 접근이 향후 미래 노동시장의 전망과 대학발전의 뉴패러다임과 연계해 보았을 때, 과연 올바른 방향과 목적 설정인지 하는 문제가 심각한 쟁점이 된다. 특히 행정관료의 통제 양태와 정도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은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대학발전 패러다임과 연계시켜 볼 때 매우 우려스럽다.

이론적으로 대학정원 조정과 대학구조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법은 첫째, 현재의 대학정원은 고정하고 대학의 수를 감축하는 방법, 둘째, 현재 대학의 수는 고정하고 대학정원을 감축하는 방법, 셋째, 대학의 수와 대학정원을 동일하게 감축하는 방법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학 퇴출 중심의 구조개혁이나 단순 기술적인 대학정원 감축 정책은 향후 대학교육의 미래 전망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대개편을 고려한다면 한계가 있는 접근이다. 그리고 정부에게 대학구조개혁 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요구된다.

학령인구 감소에 의해 대학구조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지금과 같이 모든 대학을 평가하고 그 결과로 입학정원을 감축하며, 그리고 단순히 몇 개의 대학을 통폐합시키는 방식은 근본적인 개혁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고등교육체제를 수직적 서열중심의 경쟁구도로 고착화시켜 체제 기반을 더욱 약화시킬 뿐이다. 지금의 대학 현실은 지방부터 대학체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위기적 상황이다. 뿌리가 없는 성장과 발전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아울러 저출산에 의한 학령인구 감소문제는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시장 생산성 약화 및 소비위축 등 경제발전의 동력상실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 커다란 도전적 과제이지, 교육투자 감축과 대학퇴출 중심의 구조개혁이나 단순 규모 축소지향적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도 단순한 접근이다.

정부는 이제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시대의 흐름에 걸맞는 교육관(특히 고등교육관)을 재정립해야 함과 동시에 정부의 진정한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할 때이다. 스티글리츠(2012)도 지적했듯이,노동시장에서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게임의 기본적인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법률이나 정책, 또는 프로그램이 지니는 가장 중요한 효력은 대개 분배방식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교육관련 법률이나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작동되도록 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정부의 고등교육관이 대학구조개혁의 지향점을 제시해준다는 관점에서 정부는 대학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계는 향후 다음과 같은 의제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 한국대학의 근본적인 문제진단에 근거한 ‘처방적’ 대학구조개혁 추진

- 대학발전의 뉴패러다임에 기초한 대학구조개혁: 집단경쟁력과 공공적 가치실현

- 지속적 안정적 대학자율화에 기반한 대학구조개혁

- 대학의 지형구조와 체질 변화를 위한 대학구조개혁

- 대학균형발전, 노동시장 여건 전망과 연계된 대학구조개혁

- 대학재정 지원을 위한 정부의 책무성 강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 대학발전지원법(가칭) 제정

2. 조건 없는 대학

‘인문학’이라는 사건, 불가능성의 ‘탈구축’에 바쳐진 신앙고백 : 자크 데리다의 <조건 없는 대학>

조재룡(고려대학교)

대학이 위협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말한다. 오늘날 위기에 처한 대학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려는 지적 실천적 작업들은, 대학의 본령을 묻는 물음과 한편으로 길항한다. 대학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들추어내고, 사안들을 조목조목 비판하여, 하나하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대학은 어떤 공간이었고, 무엇을 (생산-소멸)하는 곳이었는지, 대학이 수행해야 할 고유한 일과 대학의 고유한 가치(만약 존재한다면)는 무엇이며, 대학은 과연 사회에서, 이 세계에서, 어떤 물음을 생산하는 곳인지, 그 전반을 환기하고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이러한 물음들은 대학이라는 화두에 데리다가 감행한 이론적 실천적 행위일지도 모른다.

데리다는 “대학은 무엇보다도 우선,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토론하고, 사유를 갱신하는 곳이었다”고 말한다. 이 물음은 진리에 대한, 진리를 둘러싼 물음들이며, 따라서 세계와 인간에 대한 모든 것들에 가해진 지금-여기, 이전-저기의 제재나 한계, 그러니까 모종의 ‘조건’들과 연관된 물음이어야 하며, 조건들을 넘어서거나 조건들 자체를 갱신하는 미지의 장소, 조건들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가능한 물음이어야 한다고 데리다는 말한다. 진리에 관한 물음 자체를, 확정적인 언술로 해석하여 고정시키는 행위, 그러니까 진리의, 진리에 관한, 진리 주위로 촉발된 사유의 가능성이, 단일한 해석 속에서 소진하거나 일방적으로 부정하는 담론들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고 그는 덧붙인다. 대학에 대한 물음은 그에게 대학이 던지는 물음이며, 이는 ‘탈구축(deconstruction)’을 통해 제기되어야 하는, 그럴 수 밖에 없는 물음이기도 하다. 그에게 대학은 ‘탈구축’하는 물음들을 생산하는 공간이자, 도래할, 그러나 도래한다는 것 자체가, 물리적 시간이나 확정적 언술로는 마련되지도, 상정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만, 끊임없이 소급되는, 오로지 ‘도래할(a venir)’의 형태 속에서 제 물음과 저 실천을 산출해내는 특권화된 장소인 것이다.

진리가 생성되는 장소, 사건이 타진되는 장소가 대학이며, 유(流)의 중심이자 발(發)의 원동력이 바로 대학이다. 이를 위한 실천적 수행적 임무는, 그에 따르면, 문학과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les Humanites)의 어깨 위에 내려지며, 그것은 따라서 소명이자, 인문학의 미래와도 관련된 전망을 열고자 기투하는 참여의 몸짓이자 고백이라고 데리다는 말한다. “조건 없는 대학”은 그에게 인문학 덕분에 내일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저 미지의 실체이자 불가능한 공간이다.

3. 대학은 어디로 진격하고 있는가?

오찬호(사회학 연구자)

문제는 사회가 이상한 분위기에 노출되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정녕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비판해야 할 의무가 있는 대학이 환상문학이라고 호명하는 게 적당해 보이는 자기 계발서와 별반 다르지 않는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오직 자본의 논리에 ‘진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이 자본의 법칙에 예속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2004년 한 재벌기업인이 “대학이 교육의 장이라는 건 헛소리다. 직업교육소다!”라고 말한 이래 대학은 환골탈태했다. 기업은 실무위주의 교육을 원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교육을 시대착오로 규정했고, 사회가 원하는 것에 부응하라고 하면서 대학을 압박했는데 대학은 별 망설임 없이, 정확히는 ‘앞 다투어’ 그렇게 했다.

대학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닌 이상, 사회적 변화에 무관심해서는 안되지만, 무작정 그 변화에 발맞추어 함께 변할 순 없다. 특히나 ‘따라가야 하는’ 그 사회가 기업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면 말이다. 그런데 대학은 이를 당연하게 여겼고 결국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되고 말았다. 그럴수록 국가지원금이 걸린 사업의 선정에 유리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대학은 겉으로는 특성화를 외치지만 실제론 굉장히 균질해졌다. 대학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은 사라졌다. 대학에는 이제 ‘경영’이라는 하나의 가치만이 존재한다. 경영적 패러다임은 외부자본을 불렀고, 대학은 스스로 자기검열에 들어갔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중 비판을 모토로 여기는 일부 학문들은 쓸데없는 영역이 되고, 비판의식은 취업할 때 오히려 독이 되니 자제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사실은 역으로 대학의 인문학적 비판정신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비상식적인 스펙 관리를 위해 초인적인 생활을 해야 하지만 취업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사회를 ‘잘못되었다’고 말할 ‘비판적’ 학문에 재갈을 물려버리자, 잘못된 것이 더 맹렬하게 최악으로 치닫는다. 그나마 있던 고삐가 풀린 셈이니 이런 사회의 미래는 청년들의 삶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취업 10종 세트’ 아니겠는가? 대학의 역할은 한 사회의 ‘경제적 중산층’을 늘리는 것에만 있지 않다. 대학이 추구할 가치는 높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좋은 사회적 성장’이다. 자본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감시할 영역이 사라진 대가는 이토록 참혹하다. “그게 취업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냐!”면서 모두가 비판학문을 찬밥대우 했는데, 이와 비례하여 차별 받는 개인들은 늘어날 뿐이다. 지금 대학은 어쩔 수 없기에 선택해야만 하는 곳이 아닌 명백히 잘못된 곳으로 진격하고 있다.

4. 세계화라는 미로에 갇힌 대학

-대학의 사회적 기능과 시대적 역할

이은정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세계화 시대라는 조건은 대학의 미래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대학과 그것이 제공하는 고등교육은 특히 한국에서 하나의 문화자본으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지식이 정보화되고 인터넷을 통해 접근 가능한 것이 됨으로써 역사적으로 소수만이 접근 가능한 새로운 지식 생산과 계승의 시스템인 대학은 붕괴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이는 대학을 순전히 그것이 제공하는 지식의 기능으로만 파악한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학생들은 그곳이 제공하는 유명한 교수들의 지식을 얻기 위해 수업료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이 기꺼이 지불하는 학생들의 수업료에는 하버드 대학이라는 특정 집단에서만 얻을 수 있는 신뢰자본과 문화자본들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정보통신의 발전이 만약 대학을 붕괴시키게 된다면, 그것은 지불 비용에 비해서 회수할 수 있는 자본가치들이 미약한 대학들일 것이며, 소위 말하는 상위권 대학들은 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고급재화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돋보이면서 이전보다 더욱 압도적인 영향력을 떨치게 될 것이다.

이제 대학은 스스로 고급문화를 상징하는 상품이 되지 않으면, 기업체의 하청업체가 되거나 정부의 지원금에 의존하는 재-하청업체가 되어야 한다. 랑시에르는 “만일 학교가 그 평등의 약속들을 실현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수단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의 존재방식 자체 때문에, 그것을 정초하는 상징적 논리 때문에 그러하다”고 말한다. 이 주장을 조금 더 밀고 나가면, 민주주의가 약속하는 기회의 평등성과 관련해 대학은 한때 잠시 누렸던 과거의 영애를 되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취업사관학교로 변질되는 대학의 위기를 거론하며 공공성 회복을 주장하지만, 이 공공성 회복이라는 관념은 대학이 자본화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이 생산해 내는 학문들은 학회지 상에서만 존재할 뿐, 사회와 소통하지 않는다. 또한 만약 고등교육이 조건의 평등에 다소나마 기여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인 기회의 평등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학생세대가 이후 사회로 진출하여 현실적인 조건의 평등을 확대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평가해 보면 알 수 있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는 명백히 이러한 대학의 위기에 맞서서 ‘대학다움’을 사유하고 주어진 미래가 아니라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자 하는 가장 대표적인 국내 대학이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교양교육의 본질과 목적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는 도쿄대학의 부총장을 역임했던 요시미 순야가 “전문지식에 대립하여 이와 동떨어진 차원에서 교양교육을 부흥시킬 것이 아니라 고도로 세분화됨으로써 종합적인 관점을 잃어버린 전문지식을 결합하고 여기에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부여함으로써, 상대화되는 새로운 유형의 교양교육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과 동일한 지평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새로운 유형의 교양교육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올해 취임한 연세대학교 총장의 취임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학 내외적으로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가령, 학생들의 소비자주의와 기술관료적인 행정체계, 분과학문들의 전문화 경향을 모두 변화시키지 않는 이상 그 결과를 낙관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 대학들은 비교적 최근에야 인문학의 우기를 감지했기 때문에 고전적인 방식의 분과학문 제도를 아직까지 공고하게 견지하고 있고, 학자들 자신의 문제의식도 희박한 편이다. 몇몇 대학에서 선제적으로, 그러나 정책의 일환으로, 시도한 학부제라든가 학제간 혹은 다학제 방식의 학문재편이 모두 실패로 끝난 것은 분과학문의 견고한 카르텔과 학생들의 소비자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교육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경우,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교육의 내용이나 방법뿐만 아니라 그것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대상, 즉 학생들 자신의 변화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경우 잠시나마 교양강의에서 자유를 맞볼 수는 있어도, 강의시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공수업으로 돌아가면 다시금 경직되고 폐쇄적인 근대적 시간을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교양교육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실험이 대학 구성원(행정적 차원까지 포함해서) 전체의 시도가 되지 못하는 한 그 결실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중세대학이나 근대대학이 맞이했던 몰락의 운명을 피하고자 한다면, ‘다른 미래’에 대한 상상들이 대학안으로 들어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대학은 사회를 뒤쫓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가 언제든 방문하고 체류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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