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정글의 법칙>을 갈라놓은 총, 균, 쇠
- 후마니타스 칼리지 - 대학주보 공동기획. 고전의 사계 5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참으로 다양하다. 서점의 가장 좋은 자리에 쌓여 있는 베스트셀러를 고를 수도 있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읽기에 부담스러운, 이른바 ‘고전’에 해당하는 책을 고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총, 균, 쇠》라는 희한한 제목의 책은 위의 두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하는 흔치 않은 책이다. 이 괴상한 제목의 책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충격적일 정도로 흥미로운 책이다. 나는 벌써 여러 페이지를 꾹꾹 눌러 접어놓았을 정도이다. 그것은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는 뜻이다. 더불어 이 욕심의 공간적 범위를 내 강의에서 우리학교로 조금 넓혀보고 싶었다.
이 책을 가로지르는 근원적인 질문을 쉽게 이야기하자면, “어떤 사회는 스마트폰을 만들어내지만, 동 시대의 어떤 사회는 <정글의 법칙>에 나오는 부족처럼 여전히 석기시대의 생활양식에 머물러 있는가”이다. UCLA 지리학과에 재직 중인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를 ‘총,균,쇠’로 대표되는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저자는 자신이 내린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지식을 지루하지 않게 엮는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한정된 지면에 제법 두툼한 이 책의 ‘스포일러’를 제공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책을 덮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던 한 가지를 나누고 싶다. 무엇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역사적 사실을 구성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인물’이나 ‘사건’ 중심이라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연구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즐겨 읽는 ‘네이버캐스트’만 보더라도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컨텐츠들이 포털사이트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그 만큼 보는 이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교수는 인물이나 사건을 넘어, 나아가 그 배경이 되는 사회적, 문화적 장막까지 걷어내며, 더 넓은 범위에서 환경이 주는 가능성과 제약에 초점을 맞춰 문명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환경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과거에는 환경에 대한 주제가 인종주의의 맥락에서 논의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창의적인데 반해, 무덥고 먹을 것이 풍부한 열대지방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저자가 이와 같은 인종주의적인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환경적 제약과 이에 적응한 인간 집단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경 그가 풀어놓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는 자신이 실험실에서 발견한 지식이 아니며, 수많은 재료를 자신의 시각으로 차근차근 쌓아 새로운 구조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통찰력의 근원은 아마도 그가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지리학, 언어학, 생물학, 병리학, 인류학, 정치학 등의 시각과 연구방법을 편견 없이 받아들였다. 또한 그가 가진 인문학과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을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은 빠르고 정확하게 타인의 학문적 업적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융합과 통합이라는 거창한 명제가 실제로 여러분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은 저자의 필력에 빠져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증보판에서 시도한 일본인의 기원과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에 대한 분석, 한글에 대한 평가는 독서의 작은 보너스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인류문명을 통찰하는 이 책의 엄청난 내용에 주눅 들지 마시길. 인류문명에 대한 그의 주장들은 마치 큰 건축물의 구조와도 같아, 건축물이 완성되려면 수많은 다른 학문의 도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상현 <지리학 교수>
2013년 04월 01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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