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변경’에서 태어나다 - 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 후마니타스 칼리지 - 대학주보 공동기획. 고전의 사계 15아놀드 토인비는 어떤 질문을 붙잡고 『역사의 연구』를 썼을까? “영국의 역사는 영국을 알면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영국인인 토인비는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건, 나는 나 자신 만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그랬을까? 영국이 영국이 되기까지는, 다른 무수한 문명과의 접촉, 교류, 갈등과 융합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지역을 한때 정복했던 로마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더 나가서는 지중해 전체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로마가 붕괴된 이후 게르만이 대거 이동해온 유럽의 형편을 알지 않고서는 게르만의 요소가 담긴 영국 문화의 기원을 파악하기 어렵다.
아놀드 토인비의 세계사 연구는 이런 질문에 대한 그의 탐색이다. 여기서 세계사란 여러 나라의 역사를 다 다루면 되는 것이 아니다. 각기의 역사들이 서로 얽히는 가운데 보다 더 큰 흐름을 형성하고, 그것이 기본적인 맥락이 되어 각 나라의 역사나 문명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를 깊이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이를 우리의 근대사에 대입시켜 본다면 어떤 식이 될까? 1840년 영국이 일으킨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곤경에 처하면서 몰락에 들어선 사건은 곧 조선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중국이 중심이 된 중화체제는 이로써 깨져나가고, 이 와중에 일본은 서양문명을 자신의 모델로 삼으면서 이후의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해나간다. 조선의 역사적 운명은 이렇게 보다 큰 맥락 위에서 결정돼 나갔던 것을 봐도, 조선은 조선의 역사만으로는 파악될 수 없기 마련인 것이다.
조선의 역사는 세계사를 담고 있는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또한, 어찌해서 제 아무리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 문명일지라도 붕괴하고 마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에서 농사도 잘 되고 그러면서 부유한 공동체가 만들어져 고대 문명의 틀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연조건이 갑자기 달라진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문명이 어느 시기에 가면 쇠락하고, 거에는 별 볼일 없던 나라나 민족 또는 문명이 다음 시대를 이끌고 가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이냐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토인비의 유명한 ‘도전과 응전’의 개념이 등장한다. 그는 인간의 문명, 그 미래는 역경을 돌파하면서 생겨나는 힘에 보다 크게 달려있다고 믿는다. 도전에 대한 인간의 전이 문명발전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불리하게 보이는 조건이 도리어 이들에게 지혜와 능력을 길러주는 반면에, 유리한 조건에서 생기는 열매를 누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덧 창조적 의지를 잃어버린 세력들은 문명의 퇴화를 겪게 된다고 한다.
문명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곳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변경’이, 마침내 다음 시대의 새로운 주역이 되는 역사도 문명발전의 설을 보여준다. 로마는 페르시아나 그리스가 쥐고 있던 지중해 동편의 문명권에서 보면 변경에 불과했다. 고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도 황하 문명권의 시선으로는 오지였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그 변경의 불리함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다. 게르만 족은 애초에 로마제국의 주변부적 존재였으나, 그들이 가진 역동적인 힘이 로마 문명을 계승하는 동시에 중세 유럽의 질서를 건설하게 한다.
토인비의『역사의 연구』는 오늘날 새롭게 읽히고 있다. 역사학이 전문화되면서 그의 저서가 너무 일반론으로 치우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었지만, 세계사 전체의 흐름을 포착하면서 인류를 통시적으로 내다보려는 노력이 이 고전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김민웅,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2013년 9월 16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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