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마니타스칼리지-대학주보 공동기획 고전의 사계33
일상 넘어로의 도약- 제임스 조이스『율리시스(Ulysses)』
▶영화 <그래비티>의 스핀오프로 화제가 된 단편 <아닌각>은, 라이언 박사(산드라 블록 분)와 통신이 끊긴 후 뒤돌아 멀어지는 이누잇 어부의 모습 위로 한줄기 섬광이 추락하는 광경을 비추며 막을 내린다. 모호한 만큼이나 인상적인 이 결말을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 하나는 16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브뢰겔의 작품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을 떠올리는 것이다. 지척에서 벌어지는 비극에 무감각한 화폭 속의 대지, 그 주변의 인물들이 그렇듯, 평온이 내려앉은 설원과 이누잇 어부의 일상적인 모습은 <그래비티>가 주제화한 우주적 스펙터클이 누구에게나 전달 가능한 충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다.
일상과 극적인 사건의 대비를 통해 소통의 조건, 나아가 예술의 궁극적 의미를 곱십게 하는 두 작품은 하지만 동시에 또 하나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우리에게 일상이란 무엇인가? 효율의 극대화라는 미명하에 신축적 운용이 삶의 절대적 지상과제이자 생존방식으로 등극하기에 이른 21세기에 어쩌면 일상성은 그린란드로까지 찾아 나서야할 만큼 이미 우리 현실에서 멀어져버린 것은 아닐까?
일상이 단지 범속의 연장이 아니라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는 지난 세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사상가, 즉 일상성에서 자신의 사유적 근거를 발견한 프로이트와 하이데거의 경우에도 단적으로 확인된다. 《꿈의 해석》이 신세기의 안면을 뒤흔든 지 20년, 그리고 《존재와 시간》이 유럽 지성계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기 7년 전인 1920년, 2년여에 걸친 논쟁적 연재를 마친 《율리시즈》는 하루라는 일상의 단위를 낯설게 재조명한 또 하나의 대표작이다.
하지만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이 직조해내는 일상의 전경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전작을 논외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두 사상가의 저작과 궤를 달리한다. 자전적 재료를 실험적 방식으로 재배치한 조이스의 작품은, 한 인간의 성장과 생활 반경의 조건을 구성하는 ‘민족, 언어, 종교’는 물론, 부모와 친구라는 공동체의 기본 관계마저 극복의 대상으로 규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 입각할 때 《율리시즈》에 등장하는 스티븐과 블룸, 그리고 몰리라는 세 중심인물의 관계를 세속화된 성자, 성부, 그리고 성모라는 가족단위로 환원하는 관습적인 해석은 반동적일뿐만 아니라 가족의 해체가 더 이상 뉴스거리로 회자되기도 힘든 지금 왜 작품이 정전으로 추인돼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결혼이라는 관례마저 거부한 작가 생전의 모습이 그의 또 다른 저작 《망명가들》에 각인돼있음을 환기하면 더더욱 말이다.
세 등장인물의 상호작용이 그려내는 20세기의 서사시가 오늘날에도 의미를 지닐 수 있다면 그 근거는, 새 생명을 찾기 위해 레테(Lethe)의 강물을 마셔야 한 그리스 영혼들이 그랬듯 의지와 내면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행위와 정동의 즉흥적 안무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문제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함이 아니라 항시 아버지라 부를 누군가를 찾게 된다는 데에 기인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리(Aletheia)에 대한 하이데거의 논거가 상기시키듯, 관성의 탈피는 물론 그 자체로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으며 때로는 혼란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카루스의 추락’이 한때 작가가 누구인가라는 논란만을 증폭시켰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래비티>를 공동작업한 쿠아론 부자가 그랬던 것처럼, 창작이라는 행위는 때로 기존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펼쳐 보여주고, 《율리시즈》가 우리에게 제안하는 것 역시 그런 낯선 가능성의 세계와의 조우이다.
김석,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5월 11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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