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빵처럼 팔린 철학책,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
- 후마니타스 칼리지 - 대학주보 공동기획. 고전의 사계 181966년 여름, 프랑스의 한 시사 주간지는 철학자 미셸 푸코의 책에 쏟아진 관심을 전하면서 “모닝빵 같은 푸코”라는 표현을 썼다. 이 철학자의 『말과 사물』이 아침식사용 빵처럼 팔려나갔다는 것이다. 바캉스를 신성한 의례처럼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이 피서지의 바닷가 파라솔 아래에서 이 책을 읽었고, 대학가 카페에서는 이 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둠으로써 자신의 지적 수준을 과시하려는 태도가 유행했다. 하지만 이 책 출간 이후 푸코에게 쏟아진 관심과 이 책이 담고 있는 충격적인 주장에 비하면 초판 3천 5백부가 서점에 깔린 즉시 모두 팔렸다는 것, 1990년대 중반까지 프랑스에서만 10만 권 이상이 팔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모닝빵처럼 많이 팔린 책, 하지만 이 책은 결코 모닝빵처럼 만만하지 않다. 무심코 덥석 물었다간 소화불량으로 고생하기 딱 좋은 책이다. 이 책은 르네상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수 백 년의 시간을, 문학, 미술, 철학, 역사, 경제학, 언어학, 생물학, 의학 등의 분과학문을 횡단·통합하는 방식으로 집필됐다.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독자를 압도하는 온갖 종류의 텍스트 더미와 맞닥뜨리게 된다. 수 백 년에 걸친 서구의 지식 전체를 한 권으로 설명하는 것이 목표였으니 제대로 이해한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1960년대의 프랑스는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 격전이 벌어지는 전장이었다. 레비-스트로스(인류학), 자크 라캉(정신분석학), 같은 20세기 후반의 대표적 사상가들이 ‘주체’를 강조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맞서 ‘구조’의 선차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말과 사물』은 이 논쟁이 정점에 도달했을 때, 마치 ‘구조’의 승리를 축복하는 선물처럼 대중 앞에 던져졌다.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에피스테메(episteme)’라는 개념과 ‘고고학’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르네상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서구 지식사 전체를 단절과 불연속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에피스테메’는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이고, ‘고고학’은 언표들의 규칙성을 밝히기 위해 푸코가 고안한 방법론이다. 푸코는 서구의 지식 체계가 각 시대의 에피스테메에 따라 구분되고 그것들은 불연속인 관계를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15~16세기에 이르는 르네상스 시대는 ‘유사성’이, 고전시대로 명명되는 17~18세기에는 ‘표상’이, 그리고 18세기 말 이후에는 표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실체’가 모든 지식체계의 근간이 됐다는 주장을 했다. 한 마디로 특정한 시대의 지식들에는 공통성이 존재하고, 그 시대의 모든 사고와 지식은 그 공통성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가령 푸코는 르네상스를 ‘유사성’이 지배하는 시대로 간주한다. 돈키호테가 가축 떼를 군대로 보고 풍차를 거인으로 간주하는 장면,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 등은 ‘유사성’에 기초한 지식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물론 돈키호테의 비극은 그가 ‘유사성’의 에피스테메 이후에 살았다는 데서 비롯되지만. 이 책에는 ‘인간과학(인문과학)의 고고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인간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 놓은 얼굴처럼 사라질지 모른다.”)이 암시하듯이, 푸코는 인문과학의 고고학을 통해 ‘인간’을 중심에 놓는 근대적 사유방식을 비판하려 했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이 예언으로 푸코는 한동안 엄청난 비판을 받아야했다. 현대 인문과학이 닻을 내리고 있는 지점도 바로 이곳이다. 인류의 지식이, 담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푸코와의 진지한 만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만남을 통해 지금 우리의 사고와 지식을 규정하고 있는 에피스테메에 대해 물음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푸코는‘고고학’을 통해‘인간’을 중심에 놓는 근대적 사유방식을 비판하려 했다
고봉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2013년 10월 14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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