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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니타스칼리지-대학주보 공동기획, 고전의 사계32
내 서재의 고전, 님웨일즈『아리랑』

▶나는 평전이나 전기, 회고록 류의 책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대개는 과장되거나 운명처럼 정해 놓은 듯한 느낌, 게다가 방정식처럼 뻔히 답이 보이는 삶을 그린 글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연히 보게 되더라도 대개는 메뚜기처럼 반주기적으로 삶의 공간을 옮기면서 책을 정리해야 할 때마다 순위를 다투는 놈들 가운데 하나에 포함되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살아남아 가끔씩 손길을 타는 몇 안 되는 전기물들이 있다. 이들은 작가가 전기의 주인공과 쉽게 타협하지 않고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려낸 글이거나 주인공 이외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을 겪은 경우, 그리고 한 인간에게 내재된 숱한 모순들을 잘 드러낸 글들이다. 아이작 도이처가 쓴 트로츠키 3부작이나 님 웨일즈와 김 산(金山)이 함께 쓴 《아리랑》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내 나이 30세, 6.25전쟁 7년간의 소모적인 군대 복역을 강요당하고 나와, 남들보다 뒤늦게 의식의 눈이 뜨이기 시작한 청년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아 헤매던 때였다. ‘김 산’의 삶이 바로 내가 찾고 있던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아리랑》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감동은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무슨 표현의 수단과 방법으로도 다 그릴 수가 없다.”

리영희가 기자 시절 일본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리랑》은 노신과 더불어 그의 삶에 큰 힘과 위안이 됐다고 한다. 《아리랑》의 감동과 충격이 어찌 리영희뿐이었을까.

‘표지를 가린 채 그늘에서 돌려져야 했던’ 《아리랑》이 1984년 동녘에서 출판된 이후 군사정권의 시퍼런 서슬 속에서도 그늘에서 그늘로 전해져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저항과 좌절, 방황으로 보냈던 젊은 날, 《아리랑》은 나를 위로해준 벗 가운데 하나였다.

님 웨일즈는 김 산을 “내가 7년 동안 동방에 있으면서 만났던 가장 매력 있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또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있는 이 사람은 중국과 한국의 현대사를 주조해낸 저 수많은 대비극의 타오르는 불덩이(白熱) 속에서 단련되고 형성된 사나이였다.”

김산, 본명은 장지락(張志樂, 1905~1938), 평안북도 용천 출신으로 11살 때인 1916년 집을 나와 1919년부터 아나키스트 활동, 1921년 일본을 거쳐 중국으로 건너가 쑨원이 지도한 중국혁명에 참가, 장개석의 반동정책으로 광동꾜뮨 지도, 1931년 체포와 석방, 1933년 다시 투옥, 1936년 7월 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 창설, 1937년 항일군정대학에서 강의, 1938년 캉셩(康生)의 지시로 ‘트로츠키주의자이자 일본의 간첩’ 누명을 쓰고 처형. 1984년 1월 중국공산당의 복권 결정과 명예 회복. 2005년 한국정부 건국훈장 추서.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위해 온몸을 던졌던 한 사나이의 짧은 이력이다. 혁명의 시대는 수많은 비극을 낳는다. 김 산의 마지막은 동료에 의한 죽음이었기에 더 비극적이다.

“나 자신의 경우, 나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무엇이 정(正)이고 무엇이 사(邪)인가, 무엇이 올바른 것이고 무엇이 잘못인가 하는 것을 논함으로써 사람을 단죄하는 짓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내가 묻는 것은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이고 무엇이 낭비인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쓸데없는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부차적인가 하는 것이다. 다년간의 마음의 고통과 눈물을 통하여 ‘오류’가 필수적이며 따라서 선이라고 하는 것을 배웠다. 오류는 인간 발전의 통합적인 일부분이며 사회 변화과정의 통합적인 일부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