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김유신과 김원술


서기 675년 9월 26일. 신라와 당나라 운명을 결정할 전투가 한반도 중심부 한탄강가 매초성(오늘날 경기도 연천)에서 시작됐다.

당나라 군대 20만명과 신라 군대 3만명. 너무도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신라군은 마침내 당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전마(戰馬) 3만필과 엄청난 무기도 노획했다.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는 신라군 장군이 아니라 백의종군했던 김원술(金元述)이었다.

김유신 아들이었던 김원술은 당시 아버지에게 파문당한 상태였다. 김유신이 앞서 당나라와 맞선 전투에서 패배한 김원술을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당전쟁 중 석문 들판 전투에서 당나라와 말갈족 연합군에 신라군이 대패했다. 이때 김유신 아들 원술이 비장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김유신은 당나라 군대 전술이 탁월해서 어쩔 수 없는 패배였다고 인정하고 다른 장수들을 용서해 달라고 문무왕에게 청원했다. 하지만 자기 아들 김원술만은 목을 베야 한다고 요청했다. 왕명을 수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집안 교훈까지 위반했다는 이유로.

문무왕이 원술에게만 중형을 줄 수 없다며 용서를 했지만 김유신은 끝내 아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김유신 아내인 지소 부인도 아들을 집으로 들이지 않았다. 김원술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을 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태백산으로 들어가 무예수련에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마침내 매초성 전투에서 탁월한 무술과 지도력으로 당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승리를 이끈다. 김유신은 자기 지위를 자랑하거나 자기 가족들을 위해 지위를 이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가족들에게 엄정했다. 그래서 많은 존경을 받았다.

최근 우리 정부 고위공직자 일부 자녀들이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엄정하고 자신을 희생해야 할 고위공직자들 처신에 많은 국민은 큰 실망을 느낀다. 국가의 녹을 먹는 고위공직자들은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 김유신처럼 국민에게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10월 15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