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정조(正祖)의 재판


조선 22대 국왕 정조는 중요한 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리기 전에 전국 8도 관찰사가 보내온 심리(審理) 문서를 경전 대하듯 읽곤 했다. 판결에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재판 관련 서류를 꼼꼼히 검토했으며, 특히 살인 사건에 대한 백성들 의견을 신중히 여겼다.

1791년(정조 15년) 전주에 살고 있던 김계손과 아우 김성손이 부친 원수를 갚으려고 김수리봉이라는 사람을 칼로 찔러 살해한 일이 발생했다. 1년 전 김수리봉은 김계손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다가 그를 발로 걷어차 죽이고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김수리봉은 과실치사로 방면돼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그 후 김계손과 김성손은 아버지 원수를 갚기 위해 그를 찾아내 칼을 휘둘러 살해했다.

이후 김씨 형제는 관아에 찾아가 자수하면서 자신들을 죽여 달라고 했다. 당시 충청감사였던 박종악은 이 사건을 지역 아전들과 백성들 의견을 수렴해 정조에게 의견을 올렸다. "아비 원수를 갚고 난 뒤에 살인을 자백했으니 정상을 참작해 용서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정조는 이런 의견을 취합해 "비록 (김씨 형제가)살인을 했지만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에 올릴 만한 효성이기에 특별히 용서한다. 그리고 그들이 인재일 수 있으니 조정에 추천하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효(孝)와 의(義)를 실천했기에 오히려 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교 중시 체제에서 나올 수 있는 판결이었다.

얼마 전 지난 대통령선거에 참여했던 한 인사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받았다.하지만 재판부가 일부 혐의에 대해 유죄로 인정하면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도입 6년째를 맞은 국민참여재판이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성을 높인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찬반 양론으로 갈리는 것은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재판부가 본래 취지를 살리면서도 대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의 장을 열어주길 기대한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11월 13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