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나선정벌(羅禪征伐)


1658년(효종 9년) 6월 10일 새벽, 중국 동북부 헤이룽강(黑龍江) 주변은 안개가 자욱했다. 갑자기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총탄 수백 발이 `나선(羅禪ㆍ러시아)` 함대 10여 척을 향해 날아간다.

청나라 요청으로 조선에서 파견된 조총수 200여 명이 러시아 지휘관 스테파노프 선대와 격전을 벌여 러시아군 270여 명 대부분을 섬멸했다. 이 첫 충돌은 사격 솜씨가 뛰어난 조선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17세기 중반부터 러시아는 자원이 풍부한 헤이룽강 일대에 진출하면서 청나라와 충돌하게 된다. 당시 청나라 군대는 신무기인 수석식(부싯돌을 이용한 격발식 직전 단계) 총을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군대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선에 조총부대 파병을 요청한다. 당시 조선에 조총부대가 있었던 이유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효종이 국왕 등극 이후 북벌을 꿈꾸면서 비밀리에 부대를 양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을 치기 위해 만든 부대가 공교롭게도 청을 돕게 됐다.

청나라가 물자도 지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투를 승리로 이끈 파병대장 신유 장군은 러시아 군사들이 소유한 수석식 총을 모두 수거했다. 조선 군대의 화승총과는 다른 신무기였기에 국력 강화를 위해 이를 가지고 귀국하려 했다. 하지만 청나라는 이 총을 모조리 압수하고, 안에 있는 부속을 모두 뺀 소총 한 자루를 전리품의 전부라며 조선군에 건넸다. 목숨 걸고 싸운 대가치고는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서러운 파병이었다.

최근 남수단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활동 중인 우리 한빛부대가 소총 실탄이 부족해 일본 자위대에서 1만발을 지원받은 사실이 알려졌다.일본은 실탄 제공 경위까지 홍보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350년 전 서러웠던 파병을 가슴에 새기고, 국제 평화를 위한 파병이 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했으면 한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1월 1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