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천불천탑과 5월항쟁


전남 화순에는 운주사(雲住寺)라는 절이 있다. 천불산에 위치한 이 절의 백미는 `천불천탑(千佛千塔)`.

투박한 불탑과 백성 얼굴을 한 불상들로 가득한 이 천불천탑에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특별한 전설이 존재한다. 고려 태조 왕건은 죽기 전에 유언으로 `훈요십조(訓要十條)`를 남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차령 이남과 금강 밖의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라는 것. 이는 후백제인들, 즉 오늘날 호남 지역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라는 지시다.

이 소식을 들은 후백제인들은 천불동에 하룻밤 새 1000개 불상과 탑을 세웠다. 미륵이 나타나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소망하며. 그런데 두 개 불상만 완성하면 되는 시점에 수탉 한 마리가 새벽을 알리며 울었다.

불상을 만들던 후백제인들은 날이 밝은 것으로 생각하고 망연자실해 다들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불상은 완공되지 못했고, 미륵세상 역시 도래하지 않게 됐다.

완성되지 못한 999번째, 1000번째 미륵불 중 하나는 `입불(立佛)`이고 다른 하나는 `좌불(座佛)`이다. 고려왕조 지배자들은 훗날 미륵불상이 일으킬 봉기가 두려워서 좌불상의 둥글게 솟은 머리 가장자리를 떼어냈다. 그때부터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운주사 양쪽 여닫이문을 여닫을 때 돌쩌귀와 대문에서 삐걱거리는 나지막한 소리가 나는데, 이것이 고려 수도에서는 천둥소리로 들리고, 왕이 사는 궁궐에서는 폭음으로 들렸으며, 지배자들 귀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들렸던 것이다. 그래서 고려 귀족들은 운주사 문짝을 떼어내도록 했다. 이후 굉음은 사라졌지만 백성들은 천불동 운주사 대문이 다시 세워지고 미륵불이 완성돼 진정한 미륵세상이 올 것이라 굳게 믿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천불천탑 전설을 믿고 있을까. 빛고을 광주(光州)에서 민주화를 위해 정(釘) 대신 총을 잡은 이들이 바로 천불천탑을 만들었던 선조들의 후예가 아닌가 한다.

5월 광주항쟁은 어쩌면 미륵불을 세워 미륵세상을 만들려는 마지막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평화와 평등의 세상은 단순히 백제 지역 후손들만 원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 꿈꿨을 것이다. 지역 간 대립과 계층 간 갈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5월 21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