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사관(史官)과 사관(史觀)


1645년(인조 23년) 4월 26일 인조의 큰아들인 소현세자가 갑자기 죽었다.

당시 인조는 세자가 갑자기 `학질`로 죽었다며 급히 장례를 치르도록 명했다. 세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자는 신하들 요구도 철저히 묵살해 버렸다. 관료들이 세자 염습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도 무시하고 왕실 인척 몇 명만 참여하게 했다. 세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지 9년 만인 1645년 2월 중순에 조선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청나라 수도 심양에 있는 동안 서양 선교사들을 만나 유럽 선진 문물을 배우고, 포로로 끌려 온 조선 백성들이 살기 위해 공동 농장을 만들었으며 중계무역까지 했다. 청나라 황제와 신하들에게 신임도 얻었다.

인조는 국왕 지위가 세자에게 넘어갈까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런 와중에 소현세자는 귀국한 지 2개월 만에 의문사하고 만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34세.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조는 소현세자 국상이 끝난 1647년(인조 25년) 5월 소현세자의 세 아들인 석철(12) 석린(8) 석견(4)을 제주도로 유배를 보낸다. 석철과 석린은 이듬해에 죽고 말았다.

누가 봐도 의문투성이였던 일련의 사건.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소현세자 `독살`은 그 정황이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세자를 염습할 당시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관(史官)이 남겨 놓은 기록 때문이다. `세자는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왔다.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간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사람과 같았다`고 전한 것이다. 사관은 자신이 죽을 각오를 한 채 소현세자 사망이 독살일 것이라는 기록을 남긴 것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사관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소현세자 죽음에 대한 진실을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최근 보수와 진보 사이에 국사 교과서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아마도 시대를 바라보는 사관(史觀)이 달라서 나오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의 진실을 올바로 알리고자 하는 역사가로서 진정성이다. 서로가 진정성을 가지고 논의한다면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6월 4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