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문정왕후 어보(御寶)


조선시대 왕비 중에서 가장 정치적 욕망이 컸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문정왕후(文定王后ㆍ1501~1565)다.

11대 중종의 왕비이자 13대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는 자기 아들을 국왕으로 만들기 위해 31세 젊은 인종을 독살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그런 연유로 그녀는 오늘날까지 TV드라마와 영화에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2세 경원대군을 끝내 조선 국왕으로 만든 문정왕후는 1545년 을사사화를 통해 자기 반대세력들을 모두 제거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한다. 조선 건국 이후 대비들 수렴청정이 몇 차례 있긴 했지만 문정왕후는 이전 수렴청정과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글로 적어 내시를 통해 명종에게 전달했다. 명종이 자기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네가 임금이 된 것은 모두 우리 오라버니와 내 힘"이라고 소리치며 임금 얼굴을 때리기까지 했다. 물론 이는 공식 사서가 아닌 야사에 전하는 기록이다. 이런 기록만 보면 문정왕후는 분명 조선 정치사에 부담을 준 악녀(惡女)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정치적 행위는 역사적으로 엄청난 왜곡을 당한 것이기도 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유교 대신 불교 중흥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문정왕후는 불교계를 개혁하기 위해 승과를 부활시켜 승려들을 양성했다. 이때 성장한 이들이 바로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대사 유정`이었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승군을 조직하고 일본군을 물리쳐 조선을 구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권력을 휘두르고 국가적으로 억제하는 불교까지 활성화시켰으니 당시로서는 천고에 없는 `사문난적`이었던 것이다.

최근 미국 LA주립박물관에 문정왕후 어보(御寶ㆍ왕실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가 소장돼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한국전쟁 기간에 미군들이 훔친 것이라고 확인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주 국회에선 문정왕후 어보 반환에 대한 대정부 질의가 있었고, 문화부 장관은 미국과 협상을 통해 어보를 반드시 환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기간 중 강탈당한 수많은 문화유산이 외국에 가득하다. 이제 하루빨리 그 문화유산을 제자리에 다시 돌려 놓아야 한다. 국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6월 19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