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장 1조에 그리 써 있다. 헌법을 읽어보지 않았다하더라도 이 조항만큼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새삼 왜 헌법 타령이냐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3년이 되고, 6월 민주항쟁이 있은 지 26년이 되는 2013년 6월, 현재의 한국 정치와 사회를 목도하면서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기에 그러하다. 바로 ‘민주공화국이란 대체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그에 비춰볼 때, ‘과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이다.

민주공화국이란 말은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합성어’이다. 한 나라의 정체를 합성어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비록 상반된 것은 아닐지라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는 개념이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장점’을 취해 민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그릇에 담아 섞음으로써, 각각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과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에 있다. 또 모든 국민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있고, 국가는 그것이 기본적인 인권임을 확인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대한민국의 역대 독재정권 하에서 매번 생명까지 잃으면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항쟁 그리고 1987년 6월항쟁, 91년 5월투쟁 등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것은 그러한 민주주의의 장점을 거대한 ‘이상’으로 받아들이고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단점도 있다. 민주주의가 ‘진공 상태’가 아닌 부와 권력의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가운데, 실제로는 다수 국민이 자유롭고 평등치 못한 현실, 즉 부와 권력을 보유한 소수 국민만 실제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현실에서 시행될 수밖에 없어 생겨난 문제이다.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적 왜곡’이다. 즉 모든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할 저마다의 권리만 내세우다 국가와 사회의 권위와 결속력이 약화되면서, 결국 기존의 부와 권력의 격차가 유지되거나 더 커질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와 혁명주의적 훼손’이다. 소수 특권층에게서 부와 권력을 ‘되돌려 받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다수의 폭력 -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기댐으로써, 결국 민주주의를 스스로 부정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공화주의는 민주주의의 그러한 단점을 보완하고자 꺼내 든 카드이다. 개인의 권리보다 정치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시민적 참여와 책임을 중시하고, 부와 권력을 국가의 법과 제도에 기대어 균등하게 나눠 가짐으로써, 서로를 견제하되 지배하지 않는 조화로운 관계를 구현하려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화주의 역시 단점이 있다. 개인의 권리를 등한시하고 시민의 자격을 엄격히 제한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의 결합이 필요한 이유이다.

지난 주말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 매우 소수이지만 벌써 18대 대선 무효와 대통령의 퇴진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를 규탄하는 보수단체와 대학생들의 ‘맞불집회’도 동시에 열렸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내세워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의혹’ 문제를 또다시 들고 나왔다. 그 와중에 6월 임시국회는 을을 위한 정치와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국회가 될 것이라던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 필요한지 아닌지에 대한 검토도 없이 과거의 의혹을 둘러싼 숨가쁜 정쟁과 서로를 섬멸코자 하는 발설과 행동만 가득하다. 그런 중에 민주공화국에 필요한 정치적 권위의 형성과 부와 권력의 균점은 또다시 지체되고 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정을 통해 최초로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한 지 94년, 아직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김윤철,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6월 25일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