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해괴제(解怪祭)


조선왕조실록에는 우리나라에 지진이 2500건 정도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렇다면 500년 조선 역사를 통틀어 1년에 5번꼴로 지진이 일어난 셈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사람들은 지진을 단순한 자연 재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진뿐만 아니라 천둥, 해일, 가뭄, 홍수 등은 모두 국왕과 관료들 실정(失政)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1498년 11월 18일, 당시 사간원에서 근무하던 이경무가 국왕인 연산군에게 상소를 올린다. 이경무는 연산군이 여색을 탐하고 조정을 능멸하며 내시들 권한이 강해져 나랏일을 그릇되게 만들었기 때문에 최근 천둥이 치고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2년 뒤에는 예문관에서 일하는 강덕우가 다시 상소를 올렸다. 국왕의 무능함과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끊임없이 지진이 발생해 백성들이 곤궁에 처하게 됐다고 말이다.

지진 발생이 국왕뿐 아니라 신하들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다. 중종 때 영의정이었던 김수동은 충청도 지역 4개 군에 지진이 발생한 것은 자신을 비롯한 정승들 잘못 때문이라며 사직을 청했다. "어진 정승을 뽑아 하늘의 뜻에 응답하라"며 중종에게 간청하기까지 했다. 이때 중종은 "지진이 난 것은 군왕이 잘못했기 때문이지 정승 탓이 아니다"며 사직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지진이 단순 자연재해가 아닌 군왕과 신하들 책무 소홀로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래서 지진이 발생하면 조정에서는 `해괴제(解怪祭)`라는 제사를 지내 분노한 천지신명을 위로하곤 했다. 또 국왕과 관료들은 근신하며, 가난하고 억울한 백성들을 구제하는 정책을 썼다. 대사면을 단행하고 환곡 이자를 탕감해주고, 군포를 반으로 줄여주고, 억울한 백성들 소리를 귀담아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야 백성들 원성이 줄어들고, 하늘의 분노가 풀려 나라가 안정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반도에 지진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충남 보령 앞바다에서는 일주일 새 4차례나 지진이 발생했다. 만일 원자력발전소 일대에서 강도 높은 지진이 발생한다면 우리나라 역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엄청난 재앙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지진에 대해 충분한 물리적인 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조선시대 위정자들이 지녔던 것처럼 지진에 대해 겸허한 마음을 갖고, 무엇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며 올바르게 처신했으면 한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7월 31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