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신문 | 2013.08.07] 김준혁 교수 칼럼


▶ 1791년(정조 15년) 9월 창경궁 춘당대에서 국왕 정조와 규장각 신하들이 활쏘기를 했다. 평소 활쏘기를 즐겼던 정조는 규장각 신하들에게 곰 얼굴 문양이 들어간 국왕 전용 사대인 웅후(熊帿)에 10순(巡ㆍ1순은 화살 5개)씩 쏘라고 명하였다. 참으로 파격적인 일이었다.

이때 그의 사랑하는 신하 정약용이 참여했다. 정약용은 50발을 쏘아서 4발도 맞히지 못했다. 정약용은 어린 시절부터 글공부만 하였지 활쏘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왕과 더불어 활을 쏠 때 과녁에 10%도 맞히지 못하면 벌주(罰酒) 한 잔을 마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조는 벌주를 주지 않고 새로운 임무를 주었다.

"그대들에게 술을 준다면 상(賞)을 주는 것이다. 문장은 아름답게 꾸밀 줄 알면서 활을 쏠 줄을 모르는 것은 문무(文武)를 갖춘 재목이 아니니, 의당 북영(北營)에 잡아놓고 하루에 20순(화살 100개)씩 쏘아서 매 순마다 한 발씩은 맞힌 뒤에야 풀어주겠다."

북영이라 하면 훈련도감을 이르는 말이다. 훈련도감은 군기가 엄정하고 훈련 강도가 높아 조선 후기에 수도 한성부를 지키는 최고 군대로 평가받는 곳. 이곳에 정조는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정약용을 포함한 규장각 문신 4명을 보내어 요즘으로 치면 유격훈련과도 같은 특수훈련을 받게 한 것이다. 물론 활쏘기도 포함해서 말이다.

정조는 이들이 학문만 중요시 여기고 무예를 천시한다면 장차 나라를 이끌어갈 올바른 인재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이들이 처음 훈련도감에 가서 활쏘기를 배울 때 손가락이 부르트고 팔뚝이 붓고 말 타는 솜씨도 서툴러서 보는 사람이 크게 웃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정약용은 며칠이 지나자 활시위를 당기는 솜씨가 점점 능란해져서, 1순을 쏘면 세 발을 맞히는 때가 많았다. 정조는 그 내용을 보고받고 하루에 100발씩만 쏘게 하고 여가에 시경(詩經) 연구를 시키고 마침내 열흘 만에 훈련도감에서 풀어주었다.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어 균형을 갖추게 하는 정조의 인재 사랑법이 성공한 것이다.

얼마 전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실시한 극기훈련 중 뜻하지 않은 사고로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으로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학생들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한 무조건적인 극기훈련이 아니라 부족한 점을 보완해 인재를 육성하는 정조의 교육방법론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8월 7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