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 2013.08.15] 이문재 교수 칼럼


▶ 지난 8월 초 정부가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일본산 수입 식품에 대한 일부의 우려를 ‘악의적 괴담 유포’라고 규정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적절한 대처로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엄포보다는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우선이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수산물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농림수산검역본부를 통해 확인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한 해 일본에서 수입된 냉장 명태, 냉동 고등어, 냉동 대구에서 각각 34회, 37회, 9회에 걸쳐 세슘이 검출됐다.

세슘은 자연에서 나오는 방사성물질이 아니다. 세슘이 발견됐다는 것은 원전(엄밀하게 말하면 ‘핵발전소’)에서 유출된 방사성물질에 오염됐다는 증거다. 지난해 세슘이 검출된 수입 수산물은 정상적으로 유통됐다. ‘기준치 이하’ 판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세슘이 검출된다는 사실 자체도 큰 문제지만, 기준치와 정보 공개 또한 논란거리다. 외국에 견주어 검사 기준과 대상이 엄격하지 않고, 또 그마저도 일반에게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에도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과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직무유기를 규탄한 것이다. 정부는 이미 ‘인접국가 방사능 누출 사고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서도 그에 따른 조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장 의원과 공동행동은, 지난 7월24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하루 300t에 달하는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고 있으며, 고농도 방사성 증기가 대기로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는데도 우리 정부가 위기 경보를 발령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사고 원자로를 폐기하는 데 40년이 걸린다고 밝힌 바 있다. 앞으로 40년간, 방사성물질이 해양과 대기 속으로 끊임없이 유출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후쿠시마 말고도 수십기의 원전이 더 있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것은 13기(나머지 10기는 가동 중지 상태)이고, 일본 50기, 중국 18기, 대만 6기 등 모두 74기의 원전이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다.

방사능 오염 수입 식품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다가 5년 전 광우병 사태가 떠올랐다. 당시 광우병에 대한 걱정도 ‘괴담’으로 치부됐다. 그때도 느슨한 검역 시스템이 도마에 올랐다. 2008년에도 정부는 연일 ‘문제없다, 안심하라’고 발표했다. 수산물은 육류 못지않게 식탁에 자주 오르는 먹거리다. 게다가 방사능 오염은 광우병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문제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괴담’ 수준으로 받아들인다면, 언제 다시 촛불이 켜질지 모른다. 방사능 오염과 관련된 여론은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정치적 논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지난 3월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돌베개)가 출간됐다. 사사키 다카시라는 일본의 노학자가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자신이 집에서 겪은 피난생활을 묶어 낸 것이다. 사사키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서 25㎞ 떨어진 자신의 집을 떠나지 않았다. 90세 넘은 노모, 치매에 걸린 아내, 어린 손녀와 함께 ‘옥내 피난지역’에 머물면서 일본 정부와 일본 사회에 대한 분노와 당부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사사키 교수의 ‘농성일지’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계속 분노할 것이고, 그 정당한 분노를 에너지 삼아 끝까지 꿈을, 희망을, 이상을 이야기할 것이다.”

후쿠시마 지진해일 때 떠내려간 오토바이가 14개월 만에 미국 서부 해안에서 발견됐다. 후쿠시마 상공의 대기는 2~3주면 지구를 한 바퀴 돈다. 바다와 하늘, 인간과 자연은 모두 연결돼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사사키 교수의 분노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정당한 분노만큼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는 많지 않다.


이문재,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8월 15일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