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예수회, 서학 그리고 조선


로마에서 예수회 소속인 새로운 교황 프란치스코 1세가 얼마 전 즉위했다. 자신을 낮추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신임 교황 행보가 신선하다. 16세기 가톨릭의 부패로 인해 새로운 가톨릭 부흥운동과 동방전교를 위해 창립됐던 예수회는 이후 동방전교의 구심이 되었다.

중국 황제에게 신뢰를 받았던 마테오 리치와 아담 샬 등은 모두 예수회 소속이었다.

당시 예수회는 동방전교를 위해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중국 등 동방 국가의 신뢰를 얻기 위해 신부들에게 건축학ㆍ토목학ㆍ천문학ㆍ물리학ㆍ수학 등 과학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들을 선발하거나 교육해 파견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고 십자가만 세울 수 있다면 그 나라의 모든 문화를 인정하고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문제가 되는 조상 숭배도 인정했다. 동양의 지배 이념인 유교의 조상 숭배와 전혀 배치되지 않고 오히려 서양의 과학 문화를 전파하게 되었으니 천주교가 탄압을 받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가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벽 정약용 등 남인 계열 실학자들에 의해 자생적 신앙으로 확대 발전하게 된다. 학문적 호기심과 평등 개념이 이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개혁군주인 정조의 측근들 상당수가 남인 계열 실학자였고 이들은 대부분 천주학에 경도되었다. 하지만 로마 교황청과 예수회의 조상 숭배 허용에 대한 동방전교의 대립이 날로 커졌고 마침내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1773년 7월에 예수회 해체를 명했다. 예수회 사제들이 소환되고, 교황청에서 파견한 원칙론자 사제들이 새로 부임했다.

1789년 10월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은 조상 숭배에 대한 해석을 묻기 위해 윤유일을 베이징에 파견한다. 이때 구베아 주교는 조상 숭배는 절대 금지한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조선에서 천주교는 이단이 되었고, 남인 계열의 개혁적 실학자들에 대한 공격과 탄압이 시작되었다. 이들을 옹호해주던 정조가 사망한 이듬해인 1801년에 벌어진 신유박해로 이가환, 정약용 등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됐다. 이로써 조선에서 개혁과 개방 물결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만약 당시 예수회가 로마 교황청에 의해 해체되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국 땅 로마에서 벌어졌던 논쟁이 우리 역사의 물줄기까지 바꾸어 놓은 것이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4월 9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