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함경도 무사의 후예들


조선시대 함경도 백성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을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적들에게 협조를 했다. `선조실록` 1592년(선조 25년) 9월 5일 기록을 보자. 함흥에 사는 생원 진대유는 일본인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함흥 문관인 한인록과 문덕규는 자기 아버지가 의병을 일으키려 하자 적에게 밀고해 의병 모의에 가담했던 이들을 몰살시켰다고 한다. 함흥 지역 사람들은 이처럼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인 나라를 돕기는커녕 침략 세력과 야합을 일삼았다. 그날 기록에 대해 사관은 이렇게 적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의병이 일어났는데 함경도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뿐만 아니다. 함경도 백성들은 국왕 선조의 큰아들 임해군을 잡아다가 일본군에 넘겼다.

왜 이런 일들이 생겼을까? 함경도 사람들 반발 심리는 조선 초기 세조가 함경도 무사들에 대해 `무과(武科) 금지령`을 내렸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제거한 뒤 권력을 잡은 세조는 김종서의 심복이라는 이유로 파직당한 이징옥(李澄玉)이 함경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함경도 출신 무사는 등용을 꺼리기 시작한다. 이후 중앙에서 함경도에 무관을 파견하자 이번에는 함경도 길주 출신인 이시애(李施愛)가 반란을 일으킨다. 세조는 이시애 반란까지 진압한 후 아예 이 지역 무사들에 대해 무과 시험을 금지시킨다. 이때부터 함경도 지역민에 대한 본격적인 차별이 시작되고, 이들은 분노와 설움으로 나라를 원망하게 된다.

함경도 무사들은 역대 임금들에게 계속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러다가 영조대에 이르러서야 차별이 일부 해소됐고 정조 때 차별이 전면 철폐된다. 정조는 즉위년(1776년)에 함경도 무사들에 대한 차별을 전면 철폐하고 친위군영인 장용영을 창설한 뒤 함경도 무사들을 적극 활용했다. 조선 정부에 잠재적인 위협 세력이었던 이들이 나라에 충성하는 장용영 군사들이 된 것이다.

요즘 함경도 무사들 후예들이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은 "누구든 차별하고 압박하면 위험한 세력이 되지만, 반대로 포용하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디 역사의 교훈을 잘 새겨서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지 말고 북한 주민들을 포용할 수 있는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4월 16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