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역관 홍순언의 외교


임진왜란이 시작된 지 2개월 만에 수도 한양이 함락됐다.

의주까지 피난을 간 선조는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기로 했다. 쇠락기에 접어들었던 명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명으로 간 사신단은 황제에게서 원군 파병을 허락받는다. 사신단 주역은 역관 홍순언(洪純彦ㆍ1530~1598). 그는 대대로 역관 집안에서 성장한 당대 최고 역관이었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중국어 통역을 잘한다고 해서 파병 결정을 이끌어냈던 것은 아니다. 홍순언에게는 드라마와도 같은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젊은 시절 통역관으로 베이징에 갔다가 우연히 기루(妓樓)에 들렀다. 그곳에서 그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다. 그런데 여인이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어보니 여인이 대답하기를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장사 치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 몸을 기생집에 팔았다"는 것이었다. 사연을 들은 홍순언은 역관에게 허용된 중국 교역을 위한 상업 자금을 모두 털어 술집에 주고 그 여인에게 자유를 찾아 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그 여인은 타고난 미모로 명나라 황제 측근이자 외교를 담당하는 예부상서 석성(石星)의 후실이 되었다. 이 여인은 생명의 은인인 홍순언이 조선에서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1584년 홍순언은 명나라 조정 문서에 태조 이성계 아버지가 이자춘이 아닌 이인임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고치기를 청원하는 사신단 일원으로 베이징에 갔다가 그녀를 만났고 석성의 도움으로 이를 해결했다. 석성이 외교 책임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사실 명나라에서는 태조 부친 문제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조선을 통제하기 위해 200년 동안 고쳐주지 않았다. 잘못 정리된 조선 왕실 종통 문제를 고치기 위해 많은 사신이 명나라에 파견됐지만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다.

홍순언은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다시 명나라로 원군을 청하러 갔다. 국방을 책임지는 병부상서가 되어 있는 석성의 도움으로 원군 출병을 허락받았다. 풍전등화인 조선이 전세를 역전시킬 결정적 기회를 얻은 것이다. 조선은 명나라 군대와 연합하여 일본군을 조선땅에서 몰아냈다. 소설 같은 내용이지만 이는 엄연한 역사다. 지금 미국에서는 한ㆍ미 정상회담과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고 있다. 선조들 지혜를 빌려 우리 외교관들이 좋은 성과를 갖고 귀국하길 기대해 본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5월 7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