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신문 | 2014.01.01] 김준혁 교수 칼럼


▶ 1936년 2월 21일, 북풍이 몰아치는 차가운 뤼순 감옥에서 조선인 한 명이 숨을 거둔다. 당시 그의 나이 57세. 독립운동으로 10년형을 선고받고 8년째 복역하다 숨진 그는 바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이었다.

투옥 직전까지 늘 독립투쟁의 현장에 있던 그는 "내가 죽으면 시체가 왜놈들의 발끝에 채이지 않도록 화장하여 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을 정도로 잃어버린 우리 역사의 흔적을 더듬고 민족혼을 깨우치던 사학자요, 언론인이며 혁명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천재성을 보였던 그는 1905년 26세 되던 해에 오늘날 서울대 교수에 해당하는 성균관 박사에 임명됐으나 일제의 조선 침략이 노골화되자 성균관 박사를 그만두고 당시 반일 언론의 중심에 있던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논설을 쓰면서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자 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우리나라의 역사 연구를 통해 민족구국운동을 벌이고자 했다. 이순신, 최영, 을지문덕 장군 등의 전기를 발표하며 우리 역사에서 자주성을 찾게 하고, 역사적 인물들의 주체적인 활약을 부각시키면서 사대주의와 양반의식을 철저하게 배격했다. 단재는 또 백두산 등정, 광개토대왕비 답사, 고구려와 발해 유적지를 돌아보며 우리의 역사가 결코 퇴영적인 것이 아니요, 고조선과 고구려 등은 오히려 강대한 중국에 맞서 영토를 확장하거나 지키며 살아 온 것임을 분명하게 밝혀냈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민족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역사는 국가와 민족에 중요한 것이다.

최근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친일, 독재 등을 미화했다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급기야 일선 교사들은 물론 학생들까지 나서서 대자보를 붙이며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반대했고, 전국적으로 교과서 채택이 취소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는 우리 국민이 아직까지 역사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으며, 민족주의 정신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다. 교육관계자들은 이를 깊이 생각하기 바란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1월 8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