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안중근 의사


1909년 10월 26일 오전 7시. 하얼빈역은 일본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러시아와 외교관계를 맺으려는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방문하기 때문이다. 낡은 양복을 입은 안중근은 일본인들 틈에 끼어 자연스레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당초 러시아 당국은 혹시라도 있을 이토에 대한 암살 시도를 막기 위해 동양인들에 대한 검문을 실시하자고 일본 측에 제안했지만 일본 당국은 자국민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검문을 거절했다.

오전 9시 15분, 기차가 멈추고 군악대 연주가 울린다. 일장기를 높이 든 일본인들 만세 소리를 들으며 이토는 러시아 재무상 코콥체프와 함께 러시아 군대를 열병하기 위해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브로닌 7연발 권총을 손에 쥔 안중근은 그 순간 열병대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이토 가슴에 총탄 세 발을 발사했다. 러시아 군인들과 일본인들은 당황해서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안중근은 자신이 저격한 사람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당시 맨 앞에 행진하던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등 일본인 세 명을 향해 다시 총을 쐈다. 거사 직후 그는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외쳤다. 또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내가 도망갈 줄 아느냐. 내가 도망갈 생각을 했다면 죽음터에 들어서지도 않았을 것이다"라며 하얼빈역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지난 19일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개관했다. 중국 정부는 "기념관을 세운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일제 침략 역사를 회고하고 직시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일본 초대 총리를 살해해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며 기념관 개관에 항의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항의보다는 자신들이 일으킨 한반도 침략과 태평양 전쟁에 대해 먼저 사과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안중근 의사가 그토록 주장했던 `동양평화론`을 실현하는 전제조건이다. 일본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한ㆍ중ㆍ일 3국의 평화는 요원하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1월 22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