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신문 | 2014.01.29] 김준혁 교수 칼럼


▶ 조선시대 한양과 경기 지역에 살던 여성들은 설날이 되면 숙정문(肅靖門)에 가서 기도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 북한산 동쪽 삼청동과 성북동이 만나는 계곡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숙정문은 남대문ㆍ동대문ㆍ서대문과 함께 서울성곽 4대문 중 하나로 `북대문`이라고도 불린다.

조선 여인들이 특히 이곳을 찾은 까닭은 음기(陰氣)가 강해 최고의 기도처라고 소문났기 때문이다. 1413년(태종 13년) 당시 풍수가로 이름난 최양선은 숙정문을 막아야 한다고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표면적 이유는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가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되므로 여기에 문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음기가 강해 여인들이 음란해지고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태종은 그의 말만 믿고 숙정문을 폐쇄했다. 또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했다.

그런데 숙정문을 폐쇄한 후부터 도성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정월 초하룻날 도성 여인들이 숙정문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서민들뿐 아니라 사대부 집안 여인들까지 이 소문을 믿고 숙정문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 새해 첫날부터 일반 가정에 있는 여인들이 숙정문에 가기란 힘든 일이었다. 명절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새해 첫날뿐만 아니라 정월 대보름 때까지 숙정문에 가서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지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기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정성껏 기도를 드렸다.

이제 곧 진정한 갑오년 새해를 맞는 설 연휴가 시작된다. 이때만 되면 많은 여성들은 명절을 맞은 기쁨보다는 시댁 식구들과 차례를 준비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명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뀐 만큼 설 준비를 무조건 여성들에게만 맡기기보다는 가족 구성원 모두 도와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설이 끝나면 그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줘야 할 것이다. 그래야 기쁜 마음으로 가족과 본인을 위해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준혁,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1월 29일자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