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주보|2015.11.16] 후마니타스칼리지-대학주보 공동기획 [인류문명을 만든 핵심개념(6)] 개인, 집단으로부터의 탈출
▶개인이라는 말이 한국어에서 사용된 것은 백 년 밖에 되지 않았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전에는 개인이 없었는가? 그렇다.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의미로의 개인은 19세기까지의 동아시아에서는 없었다. 사실 이러한 사정은 전근대시대 인류 문명 모두가 동일하다. 개인이라는 말이 서양 세계에서 등장한 것도 불과 몇 백 년 밖에 되지 않는다. 인간이 개인으로 여겨진 것은 유럽인들이 근대세계를 발명하면서부터이다.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이라는 뜻의 'indivisible'에서 파생된 '개인(indivisual)'이라는 단어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5세기부터다.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이전까지 신 중심이던 세계관이 인간 중심의 세계로 재편되면서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단수로서의 개인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고유성을 가진 개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어 17세기에 이르러 계몽주의 사조가 일어나면서 철학, 법률, 사회이론 등에서 개인주의가 적극적으로 발현되었고 개인이라는 개념은 인간과 세계를 파악하는 중심 개념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긴 인류사에서 보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개인이라는 말과 그에 상응하는 개념은, 아직도 세계 여러 곳에서 제대로 이해되지 않거나 설령 이해되더라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혹시 받아들여지더라도 문명권에 따라, 그리고 나라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개인의 결정권이 상당히 제한된 이슬람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진 미국 같은 곳도 있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사상을 설파한 존 로크는 젊은 시절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서 관리 생활을 했는데, 거기서 목도한 미국의 개척자들은 황야에서 한 자루 총에 의지한 채 자신과 가족의 삶을 책임지던 개인이었다. 로크는 이것으로부터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철학을 정립했다고 한다. 미국의 초월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빗 소로는 "개인이 국가보다 상위의 독립적인 권력이며 개인으로부터 국가의 권력과 권위가 파생된다"고 주장하면서, 국가가 개인의 의사와 반대되는 목적으로 세금을 사용한다면 세금납부를 거부하는 시민불복종의 권리를 모든 개인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백오십년 전에 나온 것이지만 현재의 한국인들에게는 여전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독립성은 아직도 그다지 높은 가치로 여겨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개인이나 개인주의라는 말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안착되지 않았고, 그다지 좋은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혼동되기 때문이다. 이기주의는 집단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데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태도는 즉각 공동체 유지에 위협이 되는 행동으로 간주되곤 한다. 물론 한국 사회가 개인을 중요시하지 않고 집단을 먼저 고려하는 태도를 취하는 데는 나름의 역사적 이유가 있다. 개인성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하는 오랜 전통에서는 조상과 가문, 그리고 공동체를 개인보다 우위에 두었다. 이 사고방식에서 개인은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조상의 후예이고 가문, 가족의 일원이며 나아가서는 학교, 회사, 국가의 일원이 된다.
개인이라는 가치는 근대성의 핵심이다. 사회적 지위나 계급, 혈연이나 지연 같은 집단성으로부터 벗어날 때 개인이 탄생한다. 개인은 외부의 지시와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개인이 희생되는 사회는 고통 받는 사회다. 우리 사회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권위주의, 서열주의 등은 모두 개인주의를 가로막은 집단주의의 다른 이름들이다. 이러한 집단주의는 결코 보편성의 지평, 세계시민의 광장으로 나아갈 수 없다. 개인 한 사람 한사람이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보편화될 때 그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근대의 가장 큰 문제인 차별의 문제를 넘어서 세계시민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영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 소장
11월 16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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