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주보|2015.11.30] 후마니타스칼리지-대학주보 공동기획 [인류문명을 만든 핵심개념(7)] 욕망, 결핍과 충족의 패러독스
▶욕망이란 무엇인가? 무언가를 몹시 원하는 것이다.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한다. 우리는 행복과 건강, 미모와 지성, 재력과 권력을 원한다. 욕망은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은 지금 내게 결핍된 것이다. 욕망은 그 결핍을 채우려는 운동이다. 욕망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핍이 필요하다. 에로스(Eros)는 풍요의 신 포로스(Poros: plenitude)와 결핍의 신 페니아(Penia: poverty)의 소생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인류가 발생하면서부터 함께 있어왔다고 해도 좋을 만큼 오래된 것이다.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해 '조금 부족한 재산, 약간 부족한 용모, 절반이 알아주는 명예. 한사람과 겨룰 체력, 청중 절반이 박수 칠 말솜씨'가 필요하다고 했다. 18-9세기 독일 관념주의 철학자 헤겔은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충족보다 한 발 앞서 있어 욕망은 만족을 모른다"고 했고, 20세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성적 욕망은 삶의 추동력이며 사회적 금기 때문에 금지된 욕망은 꿈에서라도 표출된다"고 했다. 그리고 21세기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진정한 욕망은 상징적 요구를 가로지르는 실재의 윤리"라고 했다.
동물과는 다른 인간만의 욕망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것은 고대 희랍 철학이다.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이 저술한 『향연(Symposium)』에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당대 희랍 철학자들의 열정어린 에로스 논의가 들어있다.
『향연』은 아폴로도로스가 예전에 아가톤의 집에서 들었던 향연의 이야기를 아리스토데모스에게 전해들은 것을 전하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소크라테스를 포함한 7명 논자들의 에로스 예찬론으로 이루어진다. 파이드로스는 명예심과 용기의 덕을 고취하는 에로스를, 파우사니아스는 혼의 덕을 함양하는 에로스를, 에뤽시마코스는 모든 존재자들의 형성 원리로서의 우주적 에로스를, 아리스토파네스는 인간의 상실한 본성을 치유하는 에로스를, 아가톤은 인간에게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의 원인으로서의 에로스를 찬양한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대목이다. 변증술가답게 소크라테스는 아가톤과의 문답식 논의를 통해 에로스에 대해 논의하면서, 에로스란 "그 스스로가 아름다움이 부족하기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만테이아의 여인 디오티마에게 얻은 지혜를 전하는 방식으로 포로스와 페니아의 일화를 가져와 에로스 안에 충족과 결핍이 동시에 있다고 말한다. 에로스는 지혜로운 자와 무지한 자 사이에 존재하면서 좋은 것을 영구적으로 가지려는 욕망이다. 또한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이라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일 수밖에 없다. 욕망은 아름다운 것 속에서의 출산을 통해 충족되며 아름다움의 출산은 불사를 얻는 방식이다. 불사를 얻는 보다 좋은 방법은 몸의 출산이 아닌 정신의 출산, 즉 고귀한 정신적 유산을 많이 남기는 것으로, 이를 통해 궁극적 아름다움에 도달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에로스 안에는 풍요로운 충족감과 더불어 궁핍한 결여감이 언제나 공존한다. 결핍은 욕망의 동인으로 에로스를 유발하며 이런 에로스는 완성을 향해 움직이면서 완전성의 영속화를 욕망한다. 결국 항상 완성을 향해 전진하는 이 에로스는 완성자가 아니라 미완성 상태의 중간자일 수밖에 없고, 가멸과 불멸 사이의 정령이자 다이몬(daimon)이다. 그러나 에로스는 그 상태에 머물지 않고 움직인다. 무지에서 지혜로, 추함에서 아름다움으로, 악에서 선으로,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가멸성에서 불멸성으로, 인간에서 신을 향해 상승 작용을 한다. 에로스는 미와 지와 완전을 향한 창조와 상승의 운동이라서 공동선의 이상사회를 이룩할 기반이 된다. 그것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는 진선미 일체론이다. 욕망은 완전성을 영속화하려는 운동이지만 결핍이 없다면 그런 욕망도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욕망의 패러독스이고, 에로스의 이중적 페르소나다.
조현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1월 30일자 대학주보
조회 : 8,2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