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2016.05.20] 김윤철 교수 [세상읽기] 통합의 토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격언’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쟁 때 국민에게 단결을 호소하며 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지금도 일상에서 곧잘 들을 수 있다. 조직에 속해 살아갈 경우 특히 그러하다. 단합을 강조하는 저런 식의 말은 대체로 한 조직을 이끌어가는 사람, 즉 책임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주로 흘러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도 그러하다. 박 대통령은 선거 때부터 ‘100% 대한민국’을 기치로 내걸고 ‘국민통합’을 강조해 왔다. 대통령 소속으로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이원종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새로 기용한 이유도 국민통합의 적임자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끝까지 불허해 논란을 일으킨 박승춘 보훈처장마저도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통합은 분명 필요하다. 패권을 차지하고 유지할 심산으로 다양성을 일탈 혹은 이탈로 몰아가고, 분화를 분열로 매도하면서까지 통합을 내세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국가의 명운은 통합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가 ‘공동체’인 한에서는 그러하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커다란 사회경제적·정치적 변동을 압축적으로 겪으면서 이를 경험하고 확인한 바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에서도 통합은 절실한 과제이다.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상황에서 성장의 새로운 동력과 방식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현 질서하에서 각기 다른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사회구성원들 간에 반목과 갈등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는 여전히 지역, 진영과 파벌로 나뉘어 있어 갈등 조정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갈등과 분열의 현실이 통합을 더욱더 강조하게끔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통합을 실현할 기반이 너무나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당장 부의 분포만 볼 때에도 그러하다. 2000~2013년 국세청의 상속세 자료를 분석한 동국대 경제학과 김낙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자산 상위 10% 계층은 전체 자산의 66%를, 상위 1% 계층은 26%를 차지하고 있다. 하위 50% 계층은 단지 전체 자산의 2%만을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부의 쏠림과 부의 독점이 무척이나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현실의 문제점은 대한민국의 재도약 혹은 지속성장을 위한 비전과 전략의 도출은 물론, 그것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행동심리학 연구가 알려주듯이 상위계층에 속해 있다는 의식은 자원을 독점하려는 경향을 강화한다. 부의 격차를 능력에 따라 만들어진 상하위 계층 질서의 불가피한 혹은 정당한 결과로 합리화할 가능성도 높다. 그것에 필요한 경로와 비용도 확보하고 있는 탓에 부의 격차 해소를 위한 고통분담의 요구를 회피하거나 무마시킬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있는 놈이 더해”라는 말이 괜히 널리 회자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하위계층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감이 높은 데다가 무기력감에 빠져 있어 새로운 성장동력과 방식을 모색하는 데 관심이 낮을 수 있다. 전례를 볼 때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이미 많이 가진 자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고통분담을 내세웠지만 고통전담에 다름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느껴왔다.
IMF 위기 이후의 각종 구조조정 과정이 그러했다.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을 키우며 보통사람들의 삶을 처참하게 만들었다. 부모님의 건강과 아이들 교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때는 영혼마저 피폐해졌다. 이제는 고통을 분담하려고 해도 내어줄 것이 없는 처지가 됐다. 하위계층일수록 정치를 멀리하는 경향이 괜히 큰 게 아니다. 어차피 정치는 나를 위한 일이 아닌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 모두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겠다며 국민통합을 앞세운다. 그래서인지 노래 하나 부르는 것 갖고서도 통합을 해치네 어쩌네 하면서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부의 독점’ 현실을 방기한 채 그러면 위선이고 위악일 따름이다. 때때로 세상과 삶은 위선과 위악마저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아니다. 차선 혹은 차악일지언정 부의 격차를 해소해 통합의 토대를 쌓아야 할 때다.
김윤철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5월 20일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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