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2016.10.06] 임형진 교수 [기고] 122년 전 동학혁명과 오늘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사람이 하늘처럼 귀한 세상 되었나
157년 전 수운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동학은 봉건사회 해체기에 발생한 민족 이념으로서 조선 근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동학은 당시 피폐화된 민중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키어 반봉건·반외세 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완수해 이상 국가 건설을 목표했다. 개벽의 이름으로 동학은 그때까지의 민중적 사고의 총결산이자 그들의 이상적 세계관이 수운 최제우를 통하여 구체적인 이상 사회의 건설로 완결된 것이다. 동학에서 주장하는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여 그들의 이상적인 세계를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동학은 시대적 요구와 민중 의지의 구체적 표현이었다. 특히 1894년의 동학혁명은 반봉건적 모순에 저항해 민족 평등사상에서 출발한 반외세의 자주(自主)·자립(自立) 근대국가 건설을 목표로 매진하였다. 즉 동학은 서학이라는 외세와 맞서 민족과 국가를 수호하려 했던 민족 이념이었으며, 다른 한편 봉건적 무질서를 타파하려 했던 개혁 사상이기도 하였다.
122년 전 갑오년 1월 10일 전라도 고부에서 터진 동학군의 봉기는 3월과 4월을 거치면서 호남 전 지역을 장악했다. 권력을 장악한 민비 세력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들을 무마하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꾀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동학군들의 염원을 들어볼 생각보다는 그저 안이하게 외국의 무력을 이용해 그들을 진압할 궁리만 하고 있었다.
무능한 조정은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했고 청군이 도달하기도 전에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이 갑신정변 이후 맺은 천진조약을 들어서 군대도 파견했다. 천진조약에는 양국 중 어느 일방이 조선에 출병하면 상대방 국가도 군대를 파견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일본은 자국(自國) 거류민 보호를 핑계로 조선에 들어와 경복궁을 점령해 내정간섭에 들어가면서 청나라와의 전쟁을 도모했다. 외국 군대들이 들어오는 사태에 이르자 전봉준 등 동학군 지도부는 외국군 철수를 조건으로 전주에서 화약을 맺고 해산했다. 이것으로 1차 동학혁명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이미 야욕을 가지고 조선 땅에 들어온 일본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9월 추수가 끝난 뒤 동학 2세 교조 해월 최시형은 보국안민(補國安民)과 척양척왜(斥洋斥倭)의 기치 아래 전국 동학도에게 총기포령을 내렸다. 그날이 음력 9월 18일이었다. 해월의 명령으로 그동안 호남 지방에 국한되었던 민중 봉기가 전국에서 똑같은 구호와 똑같은 이념으로 동시에 일어났다. 인간 평등의 인내천 사상으로 무장한 그들이 지향했던 세계관과 그들이 염원했던 이상 사회가 있었기에 이것을 우리는 난(亂)이 아닌 혁명(革命)이라고 한다.
오늘 120년 전 당시 동학군들의 염원은 실현되었는가. 그들이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사람이 하늘처럼 귀한 세상이 되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우리는 사람의 생명이 경시되는 무한 경쟁과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우리는 말로는 이상 사회를 외치면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우리는 주변 국가들과 구원을 풀지 못하고 긴장을 유지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오늘 동학혁명이 주는 의미는 다시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임형진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0월 6일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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