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테웹진 4월호] 허접한 편견으로부터 너를 지켜라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인기 없는 존재들을 위하여』를 읽고, 경영학과 김재현
▶소크라테스는 못생겼다. 구두장이의 가정에서 태어난 탓도 있었지만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일년 내내 냄새 나는 외투를 걸쳤으며 맨발로 걸어 다녔다. 그는 키가 작은 데다가 턱수염을 지저분하게 길렀고 대머리였다. 걸음걸이도 이상해서 남들이 보기에 소크라테스의 걸음은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을 본 아테네 시민들은 그를 보고 사티로스(그리스 신화의 색마), 괴물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납작한 코에 두툼한 입술 그리고 툭 튀어나온 눈을 가진 소크라테스는 정말 못생겼다.
소크라테스가 받은 조롱이 그의 철학적 사유에 어느 정도나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선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못생긴’ 소크라테스는 훗날 육체나 감정에 앞선 이성과 지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소크라테스는 육체로 인한 욕망의 무분별함을 절제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도덕적,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주장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것을 무시하고 살았는지 아니면 애초에 인지하지도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시점에 다시 한번 예전의 그 ‘못생김’을 마주하게 된다.
어느 날 유력한 아테네 시민 세 명(시인, 정치인, 웅변가)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신들을 숭배하지 않고, 사회질서를 흐트린다”며 그를 고소한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열리던 날 배심원으로 채택된 수백여명의 시민들 중 절반 이상은 자신들이 맡은 사건의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재판 내내 졸음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배심원들의 최종판결이 이루어지던 순간 그들에게 주어진 정보라고는 피고에 대한 나쁜 소문들과, 작고 뚱뚱하고 못생긴 ‘색마 사티로스를 닮은’ 그의 모습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과거에도 외모에 대한 놀림과 비아냥은 존재했다. 사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서양의 문화와 지성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아테네에서조차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그리고 그 놀림의 대상은 다름아닌 소크라테스다) 지금 그것이 갑자기 사라졌다면 오히려 이상해할 일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못난 놈’들은 항상 존재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다. “성격도 귀여우면서 털털하고 말도 잘 통해서” 그 애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의 외모가 아닌 내면을 보고 끌렸다고 생각하면 괜히 내 사랑이 순수하고 멋져 보일 것 같았던 것 같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자애는 그냥 정말 예뻤고, 사실 그 친구의 내면을 살펴볼 정도로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치밀한 계획을 거쳐 그녀에게 접근했다. 연애 경험이 없었던 나는 ‘공부나 학생활동을 열심히 하면 나를 멋있게 봐주지 않을까’하는 연애 초보들이 하는 전형적이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고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차갑게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이준기같이 마른 남자가 좋아”. 그녀에게 멋져 보이려고 했던 다른 행동들은 철저히 무시된 것 같았다. “그냥 잘생기고 말라야 하는 건가” 싶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이준기 같이 생기지 않은 사람이 됐다. 그녀가 보기에 그랬고 그 ‘나쁜 취향’ 이 나에게 준 콤플렉스 때문에 나는 진짜 ‘못난 놈’이 됐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거식과 폭식을 일삼는 ‘건강염려증’ 및 ‘습관성 다이어트 증후군’에 시달리게 됐다. 술 한 잔 마실 때도 근육이 풀어지지 않을지,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동안 다른 음식에 대한 소화작용이 적게 일어나서 체지방이 늘어나진 않을지 걱정하게 됐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때 이준기처럼 마르지 않았던 내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김종국처럼 허벅지가 두껍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한테는 내가 너무 말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뚱뚱한 놈인 동시에 마른 놈이었다. 이런 상반되는 각자의 시선들이 절묘하게 결합되면서 요즘은 변태적인 기준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단순히 마른 것뿐만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근육을 숨기고 있는 ‘말 근육’이라든지 아기와 같은 얼굴에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베이글녀’ 같은 공존하기 힘든 것들을 포함한 새로운 기준들이 등장하고 있다. 예전보다 세부적이며, 특수하고 극단적인 기준들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결국 타인의 욕망에 의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여기서 타인의 욕망이라 하는 것들은 말 그대로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을 말하는 것이기에 (물론 타인들 사이에 경중은 다 다르다.) 동시에 추구할 수 없는 것들, 즉 불가능한 것들을 추구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외모지상주의를 떠나서 ‘학력이 좋으면 똑똑하다’ 든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그 기술 외에도 훌륭한 점이 많다든지’ 같은 모든 ‘멋짐과 못남, 옳고 그름의 문제’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무엇이 진짜 예쁜 것이고, 중요한 것인지는 단순히 대중의 선호나, 인기로 인해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여러 의문과, 비판, 그리고 아테네를 둘러싸고 있는 상식들에 도전한다. “과연 그 말이 맞는가?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그 사고는 건전한가?” 우리는 대중의 인기와 시선, 상식으로 여겨지는 편견을 마주할 때 이런 질문을 던지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편견에 핍박 받으며 자기혐오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다시 소크라테스로 돌아가보자. 유죄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과 방청인들에게 뻔뻔하게 말한다.
“나는 숨을 쉬는 한, 그리고 지적 능력을 잃지 않는 한, 철학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훈계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진리를 명료하게 밝히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오. (중략) 그러나 여러분 (중략) 그대들이 나를 무죄로 하든 말든, 나는 나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그대들은 알게 될 것이오, 일백 번을 더 고쳐 죽는다고 해도 말이오.” - 『변명』
라고 말한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메아리만 보면 소크라테스가 결국 체제와 법에 희생당한 ‘노땅’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자신을 평생 따라다닌 ‘쓰잘데기 없는 편견’들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질 정도로 당당한 인간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은 자신의 콤플렉스와 대중의 편견을 ‘작살’낸 이런 ‘쿨함’을 통해 나타난다.
소크라테스의 예화를 빌려 알랭 드 보통이 하고 싶은 말은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멋지고 잘생겼다는 말은 아니다. 또 못생기면 못생긴 대로 다른 장점을 발견하자는 말도 아니다.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미추의 기준, 옳고 그름의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대중의 선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말이 그의 첫 번째 주장이다. 그 편견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냈다면 더 나아가 그것들을 의심하고 검증해야 한다. 과연 당신들이 하고 있는 생각이 논리적으로 맞는 것인가? 한번 따져보는 것이다. 그로써 우리는 조금 더 상식과 편견에 대항하여 당당해 질 수 있다. 거리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목숨까지 내던지며 ‘대중상식’에 도전했다.
그러니 앞으로는 외모로 당신을 비하하는 상대의 그 ‘못난 사고능력’을 비웃어도 좋을 듯하다. 취업할 때 이력서의 좁은 반명함판 사진으로는 내 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며 뒷장에 A4크기로 전신샷을 당당히 찍어 가든지, 아니면 연예인의 사진을 노골적으로 붙여놓고 “어제 라면을 먹어서 얼굴이 좀 부었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어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를 핍박하는 편견은 우리의 외모보다 더 못났다. 그러니 당당해지자 먼저 쪼는 놈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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