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교육연구소 > 에세이 > 사람이 다쳤는가

▶전호근 경희대 교수는 동아시아 철학을 연구하는 고전인문학자다. 정밀한 해석과 독창적 사유, 20년간의 고전 강좌 경험으로 다져진 탁월한 소통력으로 정평이 있다. 동아시아 고전을 해설하기 위해 유학은 물론 불교, 도교, 동학, 마르크스주의, 기독교에 이르는 폭넓은 사유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고전 해설의 외연을 넓혀왔다. 전 교수가 ‘한마디로 읽는 중국 철학’을 2주마다 한번씩 연재한다.(편집자 주)

성은 공(孔),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다. 출신은 고귀하지 않았다. 선조는 송나라에서 도망해온 망명객이었고, 아버지는 노나라 추읍의 말단 관리였으며 어머니 또한 이름 없는 가문 출신이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젊은 시절은 소·양·돼지를 치며 보냈고 한때 창고의 출납을 담당하기도 했다. 틈틈이 고대의 예법을 익혀 서른살 때 이미 예를 잘 아는 것으로 노나라에 널리 알려졌다.

주변에서 성인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배움에 싫증내지 않고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않을 뿐이라고. 그랬다. 벼슬살이한 적도 있고 천하를 주유하기도 했지만 평생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무너진 삶의 터전에서는 피맺힌 절규가 들려왔지만 풍요로운 곳에서는 더러운 축제가 이어졌다. 사람의 길을 알기 위해 예를 익혔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답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며 현자를 찾아다녔다.

주나라에 가서는 노자를 만나 예를 물었고, 장저와 걸닉에게는 나루터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모두 차가웠다. 어떤 이는 교만한 기색부터 버리라 힐난했고, 또 다른 이는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고 성을 냈으며, 석문의 문지기는 안 될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라 조롱했다. 숫제 집 잃은 개꼴이라고 대놓고 비웃는 이도 있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도가 시행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나도 이미 알고 있다.”

석문의 문지기가 말한 것처럼 그는 안 되는 줄 알면서 하는 사람이었다. 일찍이 천하를 돌아다니며 벼슬을 구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제나라에서 배척받고 송나라와 위나라에서는 쫓겨났으며 광읍에서는 도적으로 오인받아 포위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배움에 목말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점점 늘어났다. 가난뱅이, 절름발이, 나병환자, 천민 출신에서 노나라 귀족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대가 도둑질하지 않으면 백성도 하지 않을 것”

뜻을 펼 기회가 왔다. 50살에 노나라 정공의 부름에 응해 중도의 읍재가 된 것이다. 예악으로 고을을 다스린 지 1년 만에 사방이 본받기 시작했고 공을 인정받아 사공이 되었다가 대사구로 승진해 조정에 섰다. 당시 이웃 제나라는 강대하였고 노나라는 약소하여 자주 침략을 당하는 처지였다. 그는 제나라와 평화조약을 맺는 한편 협곡의 맹약에서 노나라를 억압하는 제나라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따져 제나라로부터 빼앗겼던 땅을 돌려받는 성과를 얻어냈다.

56살이 되던 해에는 마침내 재상의 직책을 대신 수행하는 자리에 올랐다. 그는 기뻐했다. 한 제자가 물었다. “군자는 화가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이 와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지. 하지만 귀한 신분으로 남에게 자신을 낮추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라고 한 적도 있잖은가?”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강대국 제나라는 그를 두려워하여 미녀 악대를 보내 노나라의 실권자들과 그를 이간했고 결국 노나라를 떠나게 되었다. 다시 천하를 돌아다니며 알아주는 군주를 구했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제나라 경공이 그를 등용하고자 했으나 안영의 반대로 물러났고, 위나라 영공이 전쟁하는 방법을 묻자 망설임 없이 다음날 떠났으며, 진나라 채나라 사이에서는 양식이 끊어져 제자들이 쓰러지기도 했다. 제자 중유가 “군자가 이렇게 곤궁할 때도 있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는 군자는 본디 곤궁한 법이라며 이렇게 가르쳤다. “향기로운 풀은 깊은 숲에서 자라면서 보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향기를 거두지 않는 법이다. 군자가 자신을 닦는 것은 세상에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모난 그릇에 모가 없다면 모난 그릇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모나게 행동했지만 사람에 대한 평가는 공정했다. 비록 관중의 그릇이 작아 패도에 그쳤어도 그가 내세운 명분만은 높이 평가했고, 자신의 벼슬길을 막았지만 오랫동안 사람을 공경하는 안영의 우정을 높이 샀으며, 전투에서 패주할 때 맨 뒤에서 후퇴한 노나라 대부 맹지반의 참다운 용기를 칭찬했다.

고국을 떠난 지 14년이 되던 해에 노나라로 돌아갔다. 그의 나이 68살이었다. 다시 벼슬을 구하지 않았지만 제자들은 더욱 늘어나 3천에 이르렀고 육예에 통달해 역사에 기록된 이만도 70여명에 달했다.

이 무렵 노나라 실권자였던 계환자가 죽으며 그에게 국정을 맡기라고 유언했지만 후계자가 된 계강자는 제자 중에서 이재에 밝은 염구를 불러 실무를 맡기고 그에게는 간간이 정치를 자문할 뿐이었다.

하루는 계강자가 백성의 도둑질을 걱정하며 그에게 대책을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가 도둑질하지 않으면 비록 상을 준다 해도 백성이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대답한 까닭은 계강자가 후계자의 지위를 훔친 큰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말년에는 가장 아끼던 제자 안회와 염경, 중유가 연이어 죽었다. 안연이 죽었을 때 그는 하늘이 자신을 버렸다며 애통해했고, 나병에 걸린 염경이 죽을 때는 손을 잡고 영결하며 믿을 수 없다고 탄식했으며, 중유의 죽음을 듣고는 음식을 물리쳐 애도했다.

음악에 남다른 조예가 있어 노나라 태사와 음악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제나라에서는 고대의 제왕 순이 지었다는 소악을 듣고 석달 동안 고기 맛을 알지 못할 정도로 심취하기도 했다. 그는 저술을 중시하지 않았지만 일찍이 <주역>을 읽고 해설을 붙였다고 하며, <시경>과 <서경> 또한 그의 손을 거쳐 정리되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사후 제자들이 기억하고 있던 스승의 말씀을 적은 글이 <논어>로 남았고 불멸의 고전이 되었다.

인의 핵심, 사람이 말보다 귀하다

<논어>는 평범한 말로 시작한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배움이 기쁜 이유는 분명하다. 당시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던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귀족으로 제한되었지만 그에게는 신분의 차별 없이 누구나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가르침은 말을 앞세우지 않았다. 말이 번드레한 제자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훌륭한 말을 하지만 훌륭한 말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훌륭한 덕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제자들은 자주 ‘인(仁)’이 무엇인지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인은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문밖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큰 손님 대하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 받들듯 해보라.”, “널리 배우고 뜻을 단단히 세우며 간절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으니 잘 찾아봐.”, “스스로 하루라도 사욕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갈 것이야.” 늘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방식으로 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게 했으며 스스로도 그렇게 했다.

평소 예악으로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고 했지만 인이 없으면 예나 악도 무용지물이라고 했을 정도로 가장 힘주어 말했던 가치는 ‘인’이었다. 인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밥 먹을 때도 인을 어기지 않아야 하고 위급한 때에도 반드시 인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까닭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 어디서든 잠시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나라에 벼슬해서 조정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의 집 마구간에 불이 났다. 조정에서 막 돌아온 그는 이렇게 물었다. “사람이 다쳤는가?” 그리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제자들은 왜 이런 이야기를 기록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당시 시장에서 말과 사람이 어떤 값으로 거래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사람 값보다 말 값이 더 비쌌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말의 값어치에 더 관심을 두었던 세상이기에 그가 말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은 평범하지만 사실 세상의 가치 서열을 뒤엎는 놀라운 이야기인 것이다. 말의 생명이 하찮아서가 아니다. 사람 값어치와 말 값을 나란히 놓고 매기는 것 자체가 안 될 일이기에 짐짓 말의 안위를 살피지 않은 것이다. 그가 사람이 다쳤는지 물은 까닭은 그가 그토록 찾던 인이 그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나 인을 내려놓지 않았던 그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다면 어떤 모습을 볼 것인가.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물을지 말을 걱정할지 망설이고, 사람을 물으면서 슬그머니 말 값을 들이대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불타버린 마구간에서 인을 찾았던 그는 이런 세상 어디에서 인을 찾을까. 그는 필경 밀려나고 쫓겨나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이렇게 외칠 것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

전호근,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월4일자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