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2018.03.08] 전호근 교수 [한마디로 읽는 중국 철학]│⑤장자.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가, 나비가 내 꿈을 꾸는가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장자의 이야기는 시비와 차별의 경계를 가차 없이 부수어버린다. 그는 꿈 이야기로 ‘꿈속의 꿈’과 ‘꿈’, 그리고 ‘현실’을 대비시키고, 그림자 이야기를 통해서 ‘그림자의 그림자’와 ‘그림자’, 그리고 ‘실물’을 대비함으로써 모든 사물이 서로 종속적으로 연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서는 마침내 맨 위에서 다른 사물을 종속시키고 있는 현실과 실물마저 부정한다. 겉으로 보기에 종속된 존재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종속의 굴레에 얽매여 있다는 비유다.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다.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분명치 않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이상향을 꿈꾸었다. 현실이 지옥이었기 때문이다. 사형당해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서로 베개를 베고 누워 있고, 차꼬를 차고 칼을 쓴 죄수들이 서로 밀칠 정도로 바글거리고, 형륙을 당해 손발 잘린 자들이 서로 마주 볼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도 유가와 묵가의 선생이란 자들은 그들 사이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돌아다니며 성(聖)과 지(知), 인(仁)과 의(義)를 잘난 척 떠들어대고 있었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성과 지는 차꼬나 목에 씌우는 칼의 쐐기와 다른 것이 아니었고, 그들이 내세우는 인과 의는 죄수의 형구를 채우는 자물쇠와 마찬가지라고. 그러니 세상이 평화롭게 다스려지려면 먼저 성지(聖知)와 인의(仁義)부터 끊어버려야 한다고.

자고 나면 나라의 주인이 바뀌었기에 하고 싶은 말을 곧이곧대로 할 수 없었다.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진 세상에서는 어제 한 말이 오늘 비수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지어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미친 소리라 여겨 아무도 듣지 않았다. 친구 혜시가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그 이유를 일러줬다. 이 나무를 보게. 크기가 산보다 높고 길가에 서 있지만 목수가 거들떠보지 않아.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기 때문이지. 자네 이야기도 마찬가지야. 크기는 하지만 쓸모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이 듣지 않고 다 떠나버리는 거야.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큰 걸 쓸 줄 모르는군. 나 같으면 나무 아래서 낮잠이나 자겠네.

그랬다. 스스로 쓸모없는 자가 되기 위해 애썼다.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한가로이 낮잠이나 자겠다고 이야기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향해 달려갈 때 홀로 자유를 찾아 방황했다. 방황이란 무엇인가. 일정한 목적이 없는 삶이다. 사람들은 목적 없는 삶을 공허하다 했지만 그가 보기에 목적만 있는 그들의 삶은 더욱 끔찍했다. 그 시절 삶의 목적이 뚜렷하고 쓸모 있는 자들이 달려간 곳은 전쟁터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성공한 자는 남을 죽였고 실패한 자는 자신이 죽었다. 사람들은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나도 살고 남도 함께 사는 도리를 찾아다녔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글로 써 남겼지만 어떤 이는 불태워버려야 할 책이라 했고 어떤 이는 자연은 알되 인간을 모르는 자라 비난했다.

시비와 차별의 경계를 부수다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그의 이야기는 시비와 차별의 경계를 가차 없이 부수어버린다. 천자인 요임금과 은자인 허유의 지위가 뒤집히고 성 밖에 사는 천민 남곽자기가 성안에 사는 귀족에게 가르침을 베풀며, 소 잡는 백정의 신들린 칼춤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삶을 구원하는 이치를 찾아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추하다고 여겨 절름발이, 언청이, 곱사등이, 사지가 지리멸렬한 기형불구라고 칭하는 인간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입을 빌려 지고(至高)의 도를 이야기했다. 그가 바란 이상향은 부유하고 귀한 자가 가난하고 천한 자의 삶을 업신여기지 않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노나라의 애태타는 절름발이에다 곱사등이인 장애인으로,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추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노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른다. 위나라의 인기지리무순과 제나라의 옹앙대영도 총체적인 장애를 가진 기형불구의 인간이었지만 한 나라의 임금이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한다. 그들에게 부와 권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뛰어난 언변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지적인 능력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른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운 덕 때문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덕이 충만해 있으면 외형의 결핍은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오히려 외형의 결핍에 가려 내면의 아름다운 덕을 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그는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린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비웃었다.

사람만이 아니다. 하늘을 가릴 만큼 커다란 붕새의 비상을 높이 사지만 매미나 메추라기의 날갯짓을 낮추어보지 않았고 황하의 신 하백(河伯)과 북해의 신 약(若)을 한자리에 불러내 우주의 광활함과 천지의 장대함을 노래했다. 까치와 오동나무가 도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가 하면 수십만년을 사는 거북이와 수백만년을 사는 상고시대의 대춘나무가 등장하여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짧은지 깨우쳐준다.

꿈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 길흉을 점치지만 그 자체가 꿈이었다는 이야기다. 그저 꿈을 현실이라 착각한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꿈속의 꿈에서 깨어나도 여전히 꿈인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죽음이라는 깨어남을 통해 깨어나야 할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림자 이야기도 했다. 그림자의 그림자가 그림자에게 묻는다. 왜 당신은 바삐 달려가다 갑자기 멈추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문득 일어서냐고. 왜 그리 지조가 없냐고. 그림자가 대답한다. 난들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는가? 내가 붙어 있는 무엇인가가 달리면 나도 따라 달리고 일어서면 나도 따라 일어서는 거지. 그림자의 그림자가 보기에 그림자는 실물이다. 하지만 실물의 처지에서 보면 그림자는 허상일 뿐 실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심의 여지 없이 실물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몸뚱이 또한 우리가 얽매여 있는 또 다른 실물의 처지에서 보면 허상이 아니겠는가.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 세상

그는 꿈과 그림자 이야기로 우리의 현실 또한 한바탕의 꿈이고 우리의 몸뚱이 또한 실물이 아니라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실물과 허상을 마주 세워 우리가 의심의 여지 없이 실물이라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존재조차 사실은 허상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그는 꿈 이야기로 ‘꿈속의 꿈’과 ‘꿈’, 그리고 ‘현실’을 대비시키고, 그림자 이야기를 통해서 ‘그림자의 그림자’와 ‘그림자’, 그리고 ‘실물’을 대비함으로써 모든 사물이 서로 종속적으로 연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서는 마침내 맨 위에서 다른 사물을 종속시키고 있는 현실과 실물마저 부정한다. 겉으로 보기에 종속된 존재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종속의 굴레에 얽매여 있다는 비유다. 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힘이 약한 자가 강한 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힘이 센 자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더 큰 힘에 의한 지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팔랑팔랑 가볍게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뜻에 꼭 맞았는데 깨어보니 갑자기 장주가 되어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지금 내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그림자와 꿈 이야기에서 서로 종속되는 것으로 그려졌던 질곡의 세계와 달리 나비의 꿈에서 그는 나비와 자신을 마주 세움으로써 둘이 하나 되어 자유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꿈속의 나비는 대상이고 꿈을 꾸는 나는 주체다. 하지만 내가 나비를 대상으로 떨어뜨리면 나 또한 다른 주체에 의해 대상으로 떨어지고 만다. 상대를 부정하면 나 또한 부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꿈속의 나비를 당당히 나의 자리에 세워 둘이 마주 서게 한다.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비 또한 내 꿈을 꿀 수 있는 평등한 존재로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나비의 비상은 자유를 얻기 위한 날갯짓이다. 그에게 자유와 평등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유란 상대를 대등한 존재로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자유란 내가 곧 너이고 네가 곧 나일 수 있는 세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소리 없는 음악에 귀 기울이게 하여 죽음과 삶을 한가지로 여기는 커다란 깨어남으로 인도한다. 그러는 동안에 이것과 저것, 옳고 그름, 크고 작음, 아름다움과 추함, 온갖 시비와 차별의 경계가 무너져 하나가 되는 도의 세계로 한 걸음씩 다가가게 한다. 언덕 위의 큰 나무로 있든, 그 나무 아래서 쉬든 그건 내 깜냥만큼 차지할 나의 자유의 경지다.

전호근,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3월 8일자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