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교육연구소 > 에세이 > [교수신문 | 2011.05.24] 도정일 대학장 대담, "대학에서의 인문학 교육은 魂을 회복해야 합니다"

△ '후마니타스 칼리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대학 내부적으로 어떤 반발이나 이견이 없었다고 들었다. 그래도 '곡절'이 있을 듯한데, 지금 시점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교양교육을 왜 해야 하고 교육의 핵심내용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라는 문제, 곧목표 설정과 내용 설계 부분이 힘들었다. 전공교육과 달리 교양교육은 일반 교육이자 전공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탐구를 중시하는 학제적 통합학문적 교육이다. 그런데 교수들은 고도의 전공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양교육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많이 모자란다. 상당수 교수들은 교양교육이란 것이 학부 저학년생들에게 전공 진입을 준비시키는 기초 훈련과정 쯤으로 생각한다. 전공에 관계없이 전 생애에 걸쳐 한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할 기본 능력, 사고력, 판단력, 넓은 안목 등을 키워주는 것이 교양교육이다. 그래서 내용설계가 아주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 준비된 경륜을 가진 교수들을 모아 교양교육을 설계하는 일은 아주 어렵고 힘들다. 어느 대학이건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 후마니타스 칼리지와 관련,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또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후마니타스 핵심 교과목은 1학년을 위한 것인데 학기 뚜껑을 열고보니 뜻밖에도 1천 명 이상의 재학생 수강자들이 덩달아 몰려드는 통에 애를 먹었다. 학생들이 그만큼 무엇인가에 목말라 있었다는 증거다. 법과 2년생 하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게임 ‘만렙’(최고 고수)이었는데 ‘인간의 가치탐색’이라는 1학기 핵심과목을 수강하면서부터는 게임도 그만두고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고 들었다. (그의 친구들의 말) 영문과 4년생 수강자 한 사람은 8월 졸업을 앞두고 뭔가 허전해서 견딜 수 없었는데 핵심과목 강의를 들으면서 “아, 내게 이게 모자랐구나” 알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의 말) 물론 좋은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살의 신입생들은 중고교 과정에서 튼튼한 독서력, 사고력을 길러 대학에 오는 것이 아니다. 다수 신입생들에게 지금 부과된 후마니타스 읽기교재는 분명 어려운 수준의 것이고, 그래서 읽어내느라 고생이 많을 것이다. 밤중에 길 가다가 전봇대를 들이받은 것처럼 멍한 느낌을 받는 학생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후마니타스 체제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호의적이고, 이런 교육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환영과 긍지를 표명하고 있다.

새로운 교양과목 내용이 소개되었을 때 대부분의 교수자들이 보인 첫 반응은 “이걸 누가 가르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었다. 출강 섭외를 받은 한 외부 인사는 핵심교과 내용을 훑어보고 나서 “아이구, 저는 못 가르치겠습니다”라며 출강을 고사했다. 그러나 지금은 담당 교수자들의 태도가 “해볼만 하다, 힘들지만 보람 있다”라는 쪽으로 바뀌었다."

△ 궁극적으로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통해 길러내고자 하는 인재상은 무엇인가.

"인간의 가슴을 이해하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만큼 아는 폭넓은 안목, 통합적 지식, 비판적 사고력, 도덕적 판단력을 가진 인재, 소통과 교감의 능력을 지닌 사람, 열정적 호기심과 왕성한 질문을 가진 인간을 길러보자는 것이 교육목표이다. 탁월한 개인, 책임 있는 시민, 따뜻한 가슴을 가진 공동체 성원-이것이 후마니타스의 인재상이랄 수 있다."

△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교재를 출간했다. 이 방대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교육'할 때,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또, 이를 담당할 '강사진'은 어떻게 '교육'해서 투입할 것인지 궁금하다.
"강의 담당자의 교육역량을 강화하는 일은 후마니타스의 상시적 과제이다. 핵심교과목의 경우, 학기 시작 전에 두어 차례 교수자 워크샵이 있었고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도 지난 두 달 반 동안 여덟 번의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시민교과의 경우에도 네 번의 워크샵이 있었다. 경희대 홈페이지 후마니타스 사이트에 들어가면 핵심교과를 가르치기 위한 교수자들의 개별 교안, 워크샵 발표물 등이 벌써 근 100편 가까이 축적되어 있다. 교수자들의 열정과 성의가 놀라울 정도이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교양교육을 위한 강력한 교수진을 계속 양성해나갈 방침이다."

△ 최근 <교수신문>에서 3회에 걸쳐 전국 대학 강사 강의료를 조사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라는 매우 중요하고, 선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지만, '강사'들에 대한 대우는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
"학기를 준비하면서 후마니타스는 핵심과목과 시민교육 강의를 전담할 객원교수 53명을 우선 충원했다. 객원교수는 3강좌를 기준으로 방학기간 포함 연봉 3천만원, 4강좌 담당일 때 연봉 3천6백만원을 지급한다. 한 강좌당 100만원 꼴이고 시수로 계산하면 시간당 8만3천원이다. 객원교수들 중에도 경력이 높은 분은 3강좌에 연봉 4천2백만원에서 4천8백만원까지를 지급하고 있다. 한 강좌당 140만원 내지 160만원, 시수로는 시간당 12만원 이상인 셈이다. 이런 처우는 현재로선 국내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일반 강사의 경우인데, 솔직히 말해 이 부분에서의 처우개선은 숙제로 남아 있다. 이번 가을학기부터 점진적으로 일반 강사 대우수준을 높여가려 한다."

△ 일전에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학 교육은 기본적으로 '경쟁/협력'의 능력을 고양하는데 있다고 말씀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는 '경쟁'만을 부추기고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학 안에서도 '경쟁'이 강조되고 있는데.

"정당하고 공정한 경쟁은 탁월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선이다. 그러나 경쟁 그 자체는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는 수단적 선이며 ‘제한된’ 선이다. 그에 반해 협력, 협업, 협동은 개인, 집단, 문명의 발전과 진보를 이끄는 핵심 가치이고 그 자체로 ‘무한한’ 선이다. 경쟁만으로는 삶의 생태계를 만들 수 없다.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공존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협력, 협업, 협동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경쟁 제일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면 그로부터 탈출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고, 교육의 역할도 요구된다. 후마니타스에서의 인문학 교육은 장차 사회로 나갈 학생들에게 세 가지 ‘관계구축’의 능력을 키워주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을 인문학의 실천적 용도와 관련지어 인문학이 반드시 가르쳐야 할 세 가지 기본 ‘건축술’이라 부른다. “나는 나를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 “나는 너와의 관계를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 “나는 남과의 관계를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이 세 가지다. 이것은 삶의 기술, 사회적 기술, 윤리적 기술에 해당한다. 인문학도들은 ‘기술’이라는 용어가 맘에 안 들지 모르지만,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인문학이 가르쳐야할 삶의 예술이자 공동체를 위한 ‘테크네’(techne)이며 시민적 덕목이다."

△근래 대학 외부에서 '인문학'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크게 시장과, 대안적 인문학 모색 그룹으로 대별할 수 있을 듯한데, 그 교집합 부분에 일정정도 '인문학의 상업화'라는 의심을 가질만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대학 외부의 인문학 운동은 그 대중적 지향과 관계없이 한국 학문체계의 위기를 반영한다는 비판도 있다.

"인문학이 다루는 연구분야는 많고 다양하다. 그러나 누가 무슨 분야에서 어떤 인문학을 하건 간에 인문학은 그것이 지고 있는 네 가지 책임을 망각할 수 없고 방기할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책임, 사회에 대한 책임, 역사에 대한 책임, 문명에 대한 책임이 그 네 가지다. 이런 책임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 인문학의 ‘정신’이다. 대학에서의 강단 인문학이 쇠락한 것은 그런 인문적 정신이 혼미해지고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없이도 대학에서의 전문적 인문학 강의와 연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학에서의 인문학 교육은 혼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 오랫동안 인문학적 모색, 실천 작업을 해오셨다. 책읽기 운동에도 관여하고 계시고……. 스스로 자신의 인문학적 색깔을 평가한다면.

"인문학의 실용성 여부를 말하는 것은 지금처럼 ‘실용’의 의미가 한참 비틀어지고 타락한 시대에는 위험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문학은 높은 실천성과 실용성을 갖고 있다. 나는 인문학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해온 사람이고, 교육에 임하는 자세에서도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최익현 편집국장 bukhak64@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