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학》은 문학이 인간에게 왜 필요하며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밝혀낸다(사진출처: 이미지투데이)
[대학주보|2014.04.07] 이윤성 교수 칼럼
[고전의 사계]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야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아이는 할머니에게 이야기 하나만 들려달라고 졸린 눈을 비비며 조른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데 하시면서 뜸을 들인 다음, 그래도 좋다는 아이의 다짐을 받고나서야 이야기 보따리를 푸신다. “옛날 옛적에 말이다.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 옛날 그 옛날” 이렇게 시작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아이를 교육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본재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야기는 아이의 눈동자를 초롱초롱하게 만들고 아이에게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자신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알려준다.
인간은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다. 밤하늘의 별들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는 아이의 영혼을 키우는 풀무이자 인간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통로이다. 철학자가 왕이 되는 이상 국가를 꿈꿨던 플라톤이 들으면 기겁할 이야기다. “시를 받아들인다면, 법과 이성 대신 즐거움과 괴로움이 왕 노릇을 하게 된다. 시인과 시를 추방해야하는 이유다.” 플라톤은 자신의 책 《공화국》에서 이야기꾼인 시인과 시를 추방해야 하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플라톤의 이 기획은 물론 성공한 적이 없다. 시인추방론의 무모함을 간파한 사람이 바로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다. 인간이 즐거움과 괴로움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점을 그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문학이 인간에게 왜 필요하며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밝혀낸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완결된 행동의 모방일 뿐 아니라,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의 모방”인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즉, 인간은 행동의 모방을 통해 객관화의 지혜를 배우는 동시에 삶에 주어지는 고통을 이해하고 극복한다. 비극에는 ‘행동의 모방’만이 아니라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사건의 ‘필연성, 개연성’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허구이지만 현실에 비추어 그럴법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개연성을 얻기 위해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유기적 통일성이다. 이 유기적 통일성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플롯 짜기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훌륭한 플롯은 다음과 같이 짜여야 한다. “이야기는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진 하나의 전체적이고 완결된 행위를 담고 있어야 한다.” 시작이란 그 앞에 아무 것도 없지만 그 뒤에 이야기가 따라 나와야 하며, 중간이란 그 앞과 뒤에 이야기가 있으며, 끝이란 그 앞에 이야기가 있지만 뒤에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플롯 짜기를 통한 유기적 통일성의 여부가 비극의 형식적 탁월성을 결정한다. 이런 유기적 통일성에 따라 짜진 비극이 가장 훌륭한 비극이다. 그는 최고의 비극으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꼽는다.
《시학》은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빼어난 것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알려준다. 할머니의 반짇고리에 바늘, 실, 골무, 자 등 한 벌의 옷을 짓기 위한 바느질 도구들이 가득하듯, 이야기꾼의 반짇고리인 《시학》에는 한 편의 이야기를 짜기 위한 필수 요소들이 빼곡하다. 하지만 《시학》을 문학 창작을 위한 지침서로만 간주하는 것으로는 미흡하다. 《시학》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의미가 이야기 속에 있다는 소중한 지혜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역사를 만들어 온 동물이다. 가난한 것은 견딜 수 있지만 이야기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간다. 어떻게? 그것이 궁금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어봐야 한다.
이윤성,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4년 4월 7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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