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과의 합일을 뜻하는 수피교의 ‘세마’의식 (사진 : 위키피디아)
[대학주보|2014.05.19] 신은희 교수 칼럼
[고전의 사계] 신(神)이 되어 버린 사랑, 루미의 《마드나위》
진실한 사랑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정녕 행복한 일이다. 수피들은 이를 ‘신(神)이 되어 버린 사랑’이라고 부른다. 루미의 《마드나위》는 ‘영적 탐구’라는 뜻으로 ‘영혼의 사랑’을 노래하는 시편이다. 이 시집의 저자는 수피 시인 젤랄룻딘 루미(Jelaluddin Rumi, 1207-1273)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마드나위》는 루미가 홀로 창작한 작품이 아니다. 루미와 그의 영적 연인 타브리즈 샴스의 사랑과 영감으로 완성된 가잘시(사랑시)이다. 《마드나위》는 페르시아 고전문학의 정수를 이루고 있는 시집으로 ‘페르시아 꾸란’으로도 불린다. 루미의 사상은 헤겔, 니체, 괴테와 같은 서구 지성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1207년 루미는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아프가니스탄 발크에서 태어난다. 루미의 아버지는 당시 저명한 신학자, 법학자, 신비가로 ‘학자의 술탄’이라는 최고의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루미 또한 종교학자와 법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훗날 루미도 수피 공동체의 최고 지도자인 ‘세이흐’에 추대된다.
어느 봄날 루미는 나그네 탁발승 샴스를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은 루미의 삶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다. 루미는 샴스와의 첫 만남을 ‘사람을 통해 신(神)의 현현을 경험하는 신비로운 순간’이라고 회고한다. 루미의 신비체험은 환상이 아니라 인간의 사랑을 통한 신과의 합일을 의미한다. 루미는 샴스와의 영적 대화를 통해 그의 직관적 통찰력에 매료된다. 하지만 루미와 샴스의 만남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들의 우정과 사랑을 질투한 루미의 추종자들은 샴스를 우물가에 묻어 살해하고 만다.
샴스가 사라진 후 루미는 정신적 고통과 고독에 시달린다. 깊은 고통은 인간을 진정 고귀하게 만드는가? 루미는 샴스의 영혼 속에서 거짓 자아가 소멸되는 ‘파나’의 경험을 한다. 《마드나위》에 나타난 사랑의 인식론은 ‘신의 불꽃’인 영적 지성에 관한 ‘사랑의 그노시스’이다. 영적 지성은 신과 인간, 우주만물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신지학(theosophy)의 세계로 초대한다. 루미는 신적 사랑을 ‘빛’의 메타포로 표현한다. 이는 고대 페르시아 조명(照明)철학이 그의 작품 속에 녹아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빛’은 동녘에서 태양이 솟아오를 때의 광휘를 뜻하는 ‘이쉬라크’ 개념으로 인간 영혼에 깃든 신지의 근원을 상징한다. 루미는 영적 지성이야말로 인간 최고의 정신이며 영원한 사랑을 생성하는 영혼의 플레로마라고 고백한다. 신적 의식의 순수한 불꽃인 사랑으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신적 본성을 지닌다. 《마드나위》에 나타난 루미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 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확인한다.
루미는 폐쇄된 영성과 우주를 거부하고 미완의 우주를 음미한다. 매 순간 변화하고, 진화하며, 신비롭게 공감하는 새로운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의 탄생과 사랑을 염원한다. 루미는 샴스와의 영적 엑스타시 속에서 《마드나위》를 완성하게 되고 페르시아 문학의 위대한 역사를 쓰게 된다.
루미와 샴스의 《마드나위》는 죽기 전에 죽어 지금 부활하는 현금의 사랑 노래이다. 루미는 오늘도 영혼의 꽃이 활짝 핀 사랑의 향연에 우리를 초대한다. 오직 진실한 사랑의 향기만이 가득한 봄의 정원. 바로 그곳에서 영원한 빛, 영원한 소멸, 영원한 사랑을 꿈꿔 본다.
<봄의 정원>
by 루미
봄의 정원으로 오세요.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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