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보완해 묶은 에세이다.
[대학주보|2014.09.01] 김은하 교수 칼럼
[고전의 사계] “횡단하고 탈주하라!”,《자기만의 방》
▶ 오늘날 ‘방’은 ‘고립’ 혹은 ‘실패’를 뜻하는 듯 보인다. 사회적 적응에 실패한 히키고모리, 납치당한 공주도 아닌데 옥탑에 갇혀 좀체 내려올 수 없는 사람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삼포세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돈도 없고 친구도 없이 찬 밥처럼 빈 방에 담긴 삶이다. 그것은 방이 아니라 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하루 종일 ‘카톡’을 하고, 타인을 흉내내며 전력을 다해 방으로부터 도주한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사방이 틀어막힌 자기만의 방을 갖기를 열망한다. 그 방은 비참함을 뜻하는 고립이 아니라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기 위한 창조적 고독, 사색의 자유를 위한 공간이다.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보완하여 묶은 에세이다. 한 편의 소설인 양 작가는 가상의 여성 화자를 등장시켜 여성 문학의 성취와 한계를 묻는다. 그런데 이 주제를 다루기 전에 여성의 빈곤과 ‘방’ 없음부터 이야기하자고 제안한다. 오랫동안 여성은 한 사회나 가족의 경제 수준과 무관하게 가난에 시달렸다. 또한 성차별적 제도와 이데올로기로 인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특히 글쓰기는 여성성을 잃게 할 악덕으로 간주되어 개인성이 허용된 공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부엌, 침실, 아이의 방만이 여성의 거주공간으로 허락되었다. 여기서 방은 제도화된 여성성의 굴레를 넘어서 한 사람의 여성을 작가, 지식인으로 탄생시키는 사회적 문화적 조건에 대한 은유이다.
울프는 세익스피어에게 재능있는 여동생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질문하며, 아마도 겨울밤 목숨을 끊어 코끼리 동물원 밖 버스정류장 교차로에 묻혔을 것이라고 답한다. 여성이 교육받을 수 없었던 16세기에 그녀의 재능은 훈련받지 못하고, 사회는 그녀를 성격을 가진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아 고독 속에서 자기살해를 택했으리라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의 위대한 여성 작가는 그저 우연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해 줄 사회적 제도 속에서 탄생됨을 암시한다. 만약 이렇듯 여성의 창조성을 억누르는 제약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여성문학비평은 여성열등성의 신화를 완성하고 남성의 권위를 보증해주는 하녀로 전락할 것이다.
화자는 마치 공간 플래시 몹이라도 하는 듯 대학, 교회, 대영박물관 등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삼위일체라 할 장소들을 침범해 그것의 허위를 들추어내고, 카페, 거리, 광장 등으로 이동하며 삶과 인생의 리얼리티와 접촉하려고 한다. 오븐에 자기 머리를 집어넣어 굽지 않기 위해서라면 광녀의 열정이라도 빌어 가로지르고 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프는 정전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전복적 글쓰기를 실험한다. 책을 펼친 독자는 자신이 진리에 다가갈 가능성을 회의하는 화자를 만난다. 일반적으로 화자/저자는 스스로의 말과 글을 진리와 동일시하는 전지전능한 주체이기 때문이기에 회의하는 화자의 존재는 당혹스럽다. 그러나 ‘멈칫거림’은 자신없음의 증거가 아닌 저자의 권위에 균열을 내기 위한 전략이다. 이른바 ‘위대한’ 책들이 남성의 우월감을 위해 여성을 열등하게 ‘창조’해내 정신적으로 살해해왔기 때문이다.
울프는 여성에게 오백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중산계급이었다는 점은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물질적 토대가 갖추어져야 함을 증거한다. 또한 진부한 관습과 전통 그리고 타자에 얽매이지 않은 ‘개인성’의 가치를 강조한다. 타인의 방해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방은 자기에게 진실한 삶으로 안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려운 시절의 여성들만을 향하고 있지 않다. 오늘날 1 대 99의 사회에서 다수는 사회적 소수자, 즉 ‘여성 젠더(gender)’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프는 자기 존재의 취약성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탈주하라고 말한다. 고립이 두려워 모방을 일삼고 그 대가로 공허에 시달리는 99%들을 위한 제안으로 울프의 해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성의 창조성을 억누르는 제약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여성문학비평은 여성열등성의 신화를 완성하고 남성의 권위를 보증해주는 하녀로 전락할 것이다.”
▲ 울프는 자기 존재의 취약성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탈주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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