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용은 전통적인 예(禮)의 원리이다
[대학주보|2014.09.15] 김수중 교수 칼럼
[고전의 사계] 생명의 원리, 도의 근본: <중용(中庸)>과 중용 사상
▶ 인문 교육과 수양을 중시했던 조선 유학에서는 교육과정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다. 먼저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등 기초과목을 공부한다. 다음으로 성인이 되면 4서와 5경을 읽는다. 주자학에서 가장 중요시한 사서(四書)를 강독하는 순서는 이렇다.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은 개인수양과 사회윤리에 대한 개괄적 내용을 정리하고 있으므로 가장 먼저 익혀야 한다. 다음에는 그 원리를 삶의 각 분야에 적용하여 설명한 ≪논어≫를 공부하고, 그것을 이론적 측면에서 심화시킨 ≪맹자≫를 읽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중용≫을 학습한다. ≪중용≫에는 인간의 삶과 세계에 대한 심오한 형이상학이 들어있기 때문에 가장 나중에 강독하게 되어 있다.
≪중용≫이라는 문헌은 원래 ≪대학≫과 더불어 ≪예기(禮記)≫의 일부분이었다. 송대에 주자에 의해서 독립된 문헌으로서 사서(四書)의 하나가 되었다. 전통적으로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인간은 자의식을 가지고 반성하는 존재이다. 누구나 하루를 마치고 스스로 반성해 보면 뉘우칠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나의 언어와 행동에 지나침(過)이나 모자람(不及)이 없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조화를 이루었는지 생각해보면 후회 없는 날이 거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중용’사상이다. 동서의 4대문명이 발생하던 기축시대에 이미 각 문화에는 ‘중용’사상이 등장했다.
가령 희랍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mesotes(중용, 중간)을 탁월한 인간의 필수 덕성으로 제기했다. 용기는 만용과 비겁의 중간이다. 인도 문명에서도 극단적인 주장을 넘어서 진리를 찾아가는 일종의 변증법이 제기되었다. 가령 ‘중도(中道)’는 불교사상의 핵심이다. 우리가 보는 현상 세계는 존재(有)하는 것인가? 부처가 대답하기를 “아니다(neti).” 그렇다면 현상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無)인가? 부처가 대답하기를 “아니다(neti).” 부처님에 따르자면 우리의 많은 판단언어들은 현실을 추상화시킨 것이며 따라서 정확하지 않다. 인식은 하나의 과정이며, 깨달음에는 단계가 있다.
특히 중국의 중용사상은 폭넓고 심오하다. 그것은 처음부터 주역의 음양 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음과 양을 가지고 모든 것을 풀이하는 주역에서 추구되는 목표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이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 곧 ‘중용’이었다. 그래서 옛부터 주역과 중용은 ‘표리(表裏)’가 된다고 하였다. 전통적 생명관을 잘 보여주는 한의학에서는 음양의 균형과 평형을 중시한다. 그래서 넘치는 기는 빼어내고(瀉) 부족한 기를 채워주는(補) 것이 한의사의 역할이다.
‘중용’은 또한 전통적인 예(禮)의 원리이기도 하다. 가령 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 3년 상을 지낸다. 여기서 3년 이상이면 너무 길고, 이하이면 너무 짧다. 그래서 ≪예기(禮記)≫에 ‘무릇 예란 중용을 원리로 하여 제정한다’라고 하였다.
글자의 개념을 보자면, 주자는 “중(中)이란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며, 용(庸)이란 평범하고 항상된 것이다”라고 정의하였다. 현대적인 시각에서 이해하자면, 중(中)이란 어떤 시스템의 평형(Equilibrium)이며 용(庸)이란 그 항상성(Homeostasis)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중국 문화에서 볼 때 ‘중용’은 생명의 원리이고, 주역의 원리이고, 예의 원리이니 주자나 퇴계에 의하면 ‘중용’이야말로 바로 도(道)의 근본이며, 고래로 성인들이 전수해 온 도통(道統)의 비법이기도 하다.
김수중, 철학과 교수
2014년 9월 15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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