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영화 <지옥의 묵시록>
[대학주보|2013.09.30] 최인자 교수 칼럼
[고전의 사계] ‘선량한’ 내면의 진실, 조지프 콘래드, 《어둠의 심연》
▶ 우리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자신이 비록 성자는 못될지라도, 나쁜 짓은 하지 않는 선량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법 없이도 살 사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껏 선량한 인간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운이 좋아 나쁜 짓을 저지를 상황에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한 번도 자신을 시험해볼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나 자신을 향한 끈질긴 탐색 끝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뿐이라면?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1899)에서 선장 말로는 백정과 경찰이라는 두 개의 닻으로 겨우 지탱하는 일상에 안주하면서 스스로를 선량하다고 믿는 우리에게 이렇게 의문을 제기한다. “발아래에는 탄탄한 포장도로가 받쳐주지. 잘 할 때는 칭찬해주고 못할 때는 덤벼들기도 할 이웃들이 주변에서 언제나 친절하게 지켜주지, 백정과 경찰 사이를 조심스럽게 발 내디디며 스캔들과 교수대와 정신 병원을 끔찍하게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자네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홀로 있는 순간에, 지켜보는 경찰이 없는 절대 고독의 순간에, 정적의 순간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속삭여 줄 친절한 이웃의 경고 목소리가 없는 절대 정적의 순간에,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는 발길이 태고의 어떤 지역으로 사람을 인도할 것인지 자네들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어둠의 심연》, 이석구 옮김, 을유문화사, 2008)
《어둠의 심연》은 선장 말로가 콩고 강을 따라 내륙 깊숙이, 상아 교역소 소장 커츠란 인물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이 소설은 바로 백정과 경찰, 이웃과 같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이 사라진 절대 고독의 순간까지 자신을 밀고 나가, 자기 안에 놓여있는 진실, ‘시간이라는 외투를 벗은 진실’을 들여다 본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아마 이만큼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심연에 다가간 인물을 그린 문학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밖에 없지 않을까.
저자인 조지프 콘래드는 실제로 1890년 6월에 선장 자리를 약속받고 당시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가 수탈과 학살을 일삼던 콩고에 갔다가, 콩고 강을 따라 6개월 동안의 항해를 마치고 유럽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그곳에서 그가 본 것은 썩어가는 시체들과 기둥에 매달린 해골들,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어가는 어린 흑인 소년이었다. 하지만 진보의 사명을 부르짖던 백인들의 만행과 위선을 넘어서는, 더 소름끼치고 깊숙한 무엇을 보았음이 틀림없다. 십여 년 후에 콘래드는 “정말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곳인 아프리카의 중심부에서 가지고 온 노획물”이라며《어둠의 심연》을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직접 콩고에 다녀온 작가의 체험 바탕
이 소설에서는 벨기에의 수도를 ‘회칠한 무덤’이라고 부르는 등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나이지리아 작가 치누아 아체베가 통렬히 비판했듯이 아프리카인들을 식인종으로 묘사하고 아프리카를 단지 ‘유럽인의 정신적 와해를 그리기 위한 소도구’로 전락시키는 등, 19세기 유럽인으로서 한계 또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아체베는 ‘인류의 일부 구성원에게서 개체로서의 인격을 빼앗는 소설’을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부르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둠의 심연》을 탈식민주의 비평 안에만 두는 것은, 아프리카를 형이상학적 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키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다. ‘연민과 과학, 진보’를 전파하는 사도로 불렸던 소설 속의 비상한 인물 커츠가 상아와 절대적인 권력에 집착하며 광기를 부리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들여다 본 것은 저 바깥, 아프리카 땅의 어둠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이었고, 거기서 발견한 진실은 타락한 백인 제국주의자만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커츠가 ‘끔찍하다! 끔찍해!(horror! horror!)’라고 부르짖은 그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부디 이 소설을 직접 읽고 그 답을 찾기를 바라지만, T. S. 엘리엇의 시 한 구절이 어쩌면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스터 커츠가 죽었어요
늙은 이에 동전 한 푼을
우리는 텅 빈 사람들
우리는 박제인간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서 있는
<홀로우맨(The Hollow Man)>
최인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3년 9월 30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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