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쏘공》에 나타난 문제들은 오늘날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대학주보|2013.11.04] 고인환 교수 칼럼
[고전의 사계] 절망이 쏘아 올린 희망,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78, 이하 《난쏘공》)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오는 우리 문학의 고전 중 하나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고등학교 시절, 성장 위주의 산업화 정책에 소외된 서민들의 애환과 절망을 막연하게나마 인식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학 시절 다시 읽은 《난쏘공》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문학에 입문한 이후 여러 번의 기회를 통해 다시 접하게 된 《난쏘공》은 사실과 환상, 내용과 형식,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현실과 꿈, 참여문학과 순수문학, 과거와 현재 등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한국 문학의 미학적 가능성을 열어줬다.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인 큰 아이가 아빠의 손때 묻은 책을 물려받아 시간을 쪼개 읽고 있는 중이다.
《난쏘공》은 ‘현실 속에서 현실 너머를 꿈꾸는’ 소설의 운명을 체현하며 한국 문학사의 두 축을 형성해온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고 있다. ‘현실 속에서’라 함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리얼리즘적 조건을 지시한다. 시대 현실에 정직하게 응전해 이를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는 태도야말로 문학이 갖춰야 할 주요한 덕목의 하나다.
반면, ‘현실 너머를 꿈꾸는’ 서사의 운명은 시대 현실을 반영하는 것만이 문학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난쏘공》은 꿈과 이상의 경계 지점, 즉 산문적 현실(타락한 현실 세계)과 시적 상상력(‘달나라’로 표상되는 환상의 세계) 사이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특유의 미학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난쏘공》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립 그 자체보다는 양자를 구별할 수 없는 현실의 모순에 관심을 집중한다. 이는 ‘나’와 ‘타자’의 조화로운 공존을 어렵게 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절망이며,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사회 건설의 지난함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이러한 딜레마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노동문제를 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방법론으로 구체화되고 있으며, 이는 리얼리즘적 세계인식과 모더니즘적인 기법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데 기여한다. 근대화의 화려함 이면에 가려진 암울한 현실을 집요하게 탐색한 작가의 미학적 태도가 돋보이는 지점은 바로 여기이다.
《난쏘공》에서 피해자들(‘앉은뱅이’와 ‘영수’ 등)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앉은뱅이’는 입주권을 강탈한 ‘사나이’를 살해하고 자신의 몫 ‘이십만 원’을 되찾는다. 절망적 상황에 몰린 ‘영수’는 자본가를 살해하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들이 저지른 극단적 행위는 현실과 꿈 사이의 화해 불가능성에 대한 작가적 절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앉은뱅이’와 ‘영수’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세희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역설적 상황을 통해 냉혹한 시대 현실이 앗아간 약소자들의 ‘소박한 꿈과 자유에의 열망’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사회 현실을 짐짓 외면해온 우리들의 ‘윤리적 무관심’을 고통스럽게 환기하고,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난쏘공》의 문제의식은 이후 영화, 연극, TV 드라마 등으로 되살아나면서 정치, 사회, 문화 전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절망적 현실에 좌절하는 ‘난장이들’의 꿈을 통해 희망을 쏘아 올린 것이다.
《난쏘공》은 여전히 살아있다. 대기업의 정리 해고 문제, 도시 재개발을 둘러싼 대립과 충돌, 비정규직 차별과 청년 실업의 문제 등 최근까지 끊이지 않고 있는 사회적 모순과 갈등은 우리를 다시 《난쏘공》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고인환,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3년 11월 04일자 대학주보
조회 : 5,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