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은 꿈을 해석돼야 할 텍스트로 여긴다
[대학주보|2013.11.11] 민승기 교수 칼럼
[고전의 사계] 꿈은 변신이다 ,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 왜, 지금, 프로이트인가? 과학적 사실을 통해 증명될 수 없는 정신분석은 망각돼야 하는 구시대의 잔해가 아닌가? 과학이 대체할 수 없는 뭔가가 남아있기라도 한 걸까? 지식으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정신분석이라는 찌꺼기를 왜, 지금, 다시 읽어야 하는가? 무의식이라는 찌꺼기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우리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제거할 수 없는 형태로 다시 돌아오는 무의식을 우리는 매일 꿈 속에서 만난다. 꿈은 이루지 못한 소망이 충족되는 공간인 동시에 상처를 주는 것과의 피할 수 없는 만남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쾌락과 불쾌, 삶과 죽음이 겹쳐있는 공간, 행복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우리의 삶 속에 침투하는 장소. 인간을 동물과 구별해주는 것이 무의식이라면, “꿈이 무의식에 이르는 최적의 길”이라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꿈을 꾸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어 고통스러운, 그러나 방어할 수 없는 형태로 귀환하는 무의식과의 만남 속에서 인간은 인간이 된다. 내가 꿈을 꾼다기 보다는 꿈 속에서 내가 만들어진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꿈의 해석》은 꿈이 무엇보다도 해석돼야 하는 텍스트라고 말한다. 해석은 하나의 답을 전제하는 ‘해독’과는 달리 해소될 수 없는 갈등을 품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이야기한다. 온전한 전체를 이루는 작품과는 반대로 텍스트는 여기 저기 구멍이 뚫린 공간이다. 설명될 수 없는 빈 공간을 가진 텍스트 속에서는 그러므로 말해진 것보다 말해질 수 없는 ‘구멍’이 더 중요하다.
해석은 이미 존재하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날 수 없는 의미를 ‘창안’하는 행위이다. 해석되어야 하는 텍스트인 꿈은 그러므로 이제까지 사유할 수 없었던 의미가 돌아오는,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의미가 출몰하는 장소이다. 이미지들은 압축(conden sation)이나 전치(displacement)를 통해 왜곡되고 변형돼 이중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엄습한다.
병 하나가 서 있고 그 앞에 당근이 놓여 있다. 그 옆에 병인지 당근인지 알 수 없는 괴물과도 같은 것이 나란히 있다. 당근과 맥주병이라는 이질적인 사물들이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발생할 때 ‘당근-병’이란 괴물이 탄생한다. 동일한 공간과 동시적 시간 속에 이질적 사물들을 겹쳐놓기. 프로이트는 이것을 ‘압축’이라 부른다.
프로이트가 ‘전치’라 부른 변장술. 혼돈스런 마그리트의 이미지들과 마찬가지로 꿈 이미지들은 규정불가능한 괴물들로 변신한다. 그러나 변신은 때가 되면 벗어버릴 수 있는 가면과도 같은 것이 아니다. 더욱이 가면은 진정한 형상을 숨기고 있는 외양이 아니라 혼돈스런 외양이 전부임을 보여준다.
다이아나의 저주를 받아 사슴으로 변한 악티온은 자신이 기르던 사냥개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의 공격을 저지하려 하지만 악티온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인간의 목소리도 사슴의 울음 소리도 아닌 괴물의 울부짖음이었다. 프로이트가 압축과 전치라는 변장술 즉 ‘꿈작업’이 꿈의 본령이라고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꿈작업이라는 변장 뒤에 꿈사상이라는 진짜 모습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꿈작업이 바로 꿈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자신을 부정하거나 스스로와는 다른 모습으로만 드러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재현할 수 없는 그래서 살해돼야 하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꿈속에서 되돌아온다. 그러나 충분히 살해되지 못한 채 되돌아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괴물들이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주는 기원이다. 무의식이라는 괴물.
민승기,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3년 11월 11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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