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쉰은 어둡고 부조리하고 절망적인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서 리얼한 ‘비판’(절망에 반항)과 냉소적인 ‘풍자’와 더불어 농익은 ‘익살’과 ‘위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였다
[대학주보|2014.12.01] 배도임 교수 칼럼
[고전의 사계] 그들도 아주 웃겨?! 루쉰《고사신편》
▶ 루쉰(魯迅, 1881~1936)은 20대에 의사가 되고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때 ‘환등기 필름’ 속에서 중국의 비참한 현실과 정신이 마비된 동포를 보고, 사람에게는 정신의 병이 훨씬 큰 문제이며, 정신의 병을 고치려면 문학밖에는 없다고 깨닫는다.
이후 루쉰은 한 친구와 ‘쇠로 된 방[鐵屋]’의 비유를 들어 중국의 미래, 즉 ‘희망’을 논한다. 그리하여 중국 최초의 현대 백화소설인 「광인일기(狂人日記)」를 써서 진보적인 잡지 《신청년(新靑年)》에 발표한다. 그는 첫번째 소설집 《외침(喊)》(15편 수록, 1923), 두번째 소설집 《방황(彷徨)》(11편 수록, 1926)과 세번째 소설집 《고사신편(故事新編)》(8편 수록, 1936)을 출간하였다.
첫번째 소설집의 제목인 ‘외침’은 중국어로 개전의 북소리가 울리면 선두 병사들이 적을 향해 돌진하면서 외쳤던 함성을 가리킨다. 이는 어리석은 민중을 각성시키고 중국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정신계의 전사’가 되고자 했던 루쉰의 의지가 투영된 것이다. 3년 뒤에 출간한 두번째 소설집은 40대 중반에 이른 그의 고뇌와 ‘방황’이 드러난다. 세 번째 소설집은 옛날이야기를 ‘새롭게 쓴 것’이다. ‘새롭게 썼다’는 재해석하고 재평가했다는 말이다. 루쉰은 코믹화를 그리듯이 중국 신화전설 속의 영웅과 성현들을 불러내되, 그들의 ‘위대성’과 ‘도덕성’을 가차 없이 벗겨내어 아주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우리’ 가운데 있는 사람으로 재창조하였다. 《고사신편》은 1936년 10월 19일 그가 사망한, 그 해 1월에 발간된 것이다.
루쉰은 병의 고통과 생명의 사그라짐을 뛰어넘어 해학과 웃음으로 마지막 불꽃을 활활 태우면서 막을 내렸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을 보존하고 사람을 만드느라 힘을 다 쓴 뒤에 지치고 여윈 채로 죽어가는 여와(女)(「하늘을 땜질한 이야기」), 사냥감을 모조리 활로 쏘아 잡아먹은 뒤에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는 생활 무능력자가 되어버린 예()와 바가지를 긁고 신경질을 부리다가 급기야는 몰래 예의 선약을 훔쳐 먹고 달로 가버린 항아(嫦娥)(「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 백성과 유리된, 엉뚱한 탁상공론에 빠진 벼슬아치와 달리 실천적이고 도덕적(금욕적)인 우(禹)(「홍수를 막은 이야기」), 충정이니 절개니 예의도덕을 지키려다 굶어죽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형제(「고사리를 캔 이야기」), 500년 전에 도적에게 죽임을 당한 사내를 다시 살려놓았더니 도리어 옷을 벗어달라고 떼를 쓰는 바람에 호루라기를 불어서 순경을 부르는 장자(莊子)(「죽음에서 살아난 이야기」) 등의 이야기가 재탄생한 것이다.
《고사신편》에서 루쉰은 어둡고 부조리하고 절망적인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서 리얼한 ‘비판’(절망에 반항)과 냉소적인 ‘풍자’와 더불어 농익은 ‘익살’과 ‘위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였다. 이 위대한 작가의 예술적 혼과 지적인 고뇌는 2000년의 가오싱젠(高行健, 1940~)에게, 민중에 대한 사랑과 소명의식은 2012년의 모옌(莫言, 1955~)에게로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세계문학의 울창한 숲에 그들이 중국 현대문학이란 커다란 나무를 심을 수 있었던 데는 ‘민족혼(民族魂)’ 루쉰이라는 영원한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도임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2014년 12월 1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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