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지켜보면서,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했을까를 고민하였다
[대학주보|2014.12.08] 채진원 교수 칼럼
[고전의 사계]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것이 평범한 악(惡)이다
▶ 필자는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학생들과 함께 시민교육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항상 던지는 질문이 있다.
여러분은 공무원이 되고 싶은가요? 여러분은 시민인가요? 어떤 사람이 시민인가요? 시민교육을 꼭 받아야 하나요?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질문을 한 후에 꼭 소개하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은 바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김선욱 옮김, 한길사 펴냄)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악행(惡行)의 반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소망 때문이기도 하다. 악행은 사이코패스와 같은 흉악한 사람들이 벌이기도 하지만, ‘근면·성실하면서도 생각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주로 저질러진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최근의 대표적인 악행을 꼽아보자.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관료마피아’의 행태와, 조선 위안부 할머니의 인권을 유린했음에도 이것을 부인하고 사죄하지 않는 일본 아베총리의 행태 등을 대표적인 악행으로 볼 수 있다.
관료마피아와 아베총리의 공통점은 자기 가정과 자기 나라의 국익을 앞세울 줄 아는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처럼, 타인(타국민)의 처지와 아픔을 생각할 줄 모르고, 자기 이익만을 앞세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어떤 끔찍한 참사와 범죄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책속의 주인공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대략적인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정의의 집’이라는 법정에 선 아이히만의 모습. 평범한 시민이며 친유대적이었던 아이히만이 나치당에 가입해 유대인 문제 전문가, 인간 도살자로 변신하게 되는 과정, 추방이나 수용, 학살 등의 방법으로 유대인들을 인간도살장으로 내모는 조직적인 과정을 통해 스스로 ‘인간됨’을 포기하는 아이히만의 모습, 아이히만 등이 반제회의를 계기로 본디오 빌라도처럼 양심을 버린 채 ‘국가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인간 도살자로 타락하는 모습, 유럽 전역에서 인간 대청소를 위해 진행된 유대인의 이송과정 등이다. 대단원에 이르면 아이히만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증거와 증언이 다뤄지고, 아이히만이 사형당하는 장면과 함께 아이히만이 유죄인 이유를 한나 아렌트의 목소리로 ‘악의 평범성’이라 규정하며 종결된다.
과연 우리에게 평범한 악을 물리칠 수 있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
한나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의 전범으로 예루살렘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을 지켜보면서,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했을까를 고민하였다. 그가 내린 결론은, 자신과 유대인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듯이, ‘흉악범이자 정신병자 아이히만’이 아닌 ‘순진무구한 아이히만의 무사유’였다. 길들여져서 수동적인 아이히만의 태도, 즉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상부조직에서 시키는 일만 근면·성실하게 한 아이히만의 평범함이 행정대학살이라는 악(惡)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또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의 유일한 특이점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음’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녀가 ‘평범한 악’이란 개념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은 “우리 안에 아이히만이 있다”는 교훈이다. 과연 우리에게 평범한 악을 물리칠 수 있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4년 12월 8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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