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주보|2015.03.16] 이정순 교수 칼럼
[고전의 사계] 여성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제2의 성》
▶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에게는 소설가, 철학자, 사르트르의 동반자, 저널리스트, 극작가, 회고록 작가, 참여지식인, 급진적 페미니스트 등 다양한 호칭이 따른다. 이처럼 많은 호칭은 생전에 보부아르가 전 생애에 걸쳐 지칠 줄 모르고 정열적으로 활동한 다양한 면모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0세기 페미니즘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에서 보부아르는 현대 여성해방의 선구자요 상징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 페미니즘을 논하기 위해서는 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이름과 그의 대표적 저서《제2의 성》에 나오는 유명한 명제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되어지는 것이다. On ne nait pas femme, on le devient.”를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 문구는 필경 보부아르의 작품과 참여활동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 남을 것이다.
《제2의 성》은 1949년 출간 당시, 프랑스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성해방을 목표로 한 이 책은 당시 프랑스 가부장적 사회에 폭탄을 던진 것과도 같았다. 여성을 남성 주체의 ‘타자’로서 종속적인 상황에 놓여 있도록 한 ‘여성성feminite’의 신화와 모성, 사랑, 성차 등에 대한 신화의 허구성을 드러내면서 양성 간의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주장한 것이다. 그 때문에 보부아르는 마르크스주의자에서부터 가톨릭교회에 이르기까지 좌우를 막론하고 보수적인 남성 지식인들의 거센 반발과 비난을 받았다. 모리아크, 카뮈 등 일부 남성 지식인들은 보부아르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부아르는 양식 있는 지식인들의 옹호와, 무엇보다도 <제2의 성>안에서 자신들의 이야기와 진실을 발견한 수많은 여성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그 후 계속해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해나간다. 출간 즉시 프랑스에서만 2만 부가 팔린 이 책은 1951년 독일어로 처음 번역된 이후 세계 30여 개국 언어로 번역돼 지속적으로 여성들의 의식을 각성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고, 급기야는 1960년대 페미니즘 운동 제2의 물결의 기폭제가 된다.
<제2의 성>은 사회, 정치, 신화, 문학의 모든 분야에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와 남성이 여성에게 부여한 역할이나 ‘이미지’를 역사, 사회학, 철학, 인류학, 생물학, 정신분석학을 동원해 분석한 여성 조건에 대한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연구서이다. 따라서 이 책은 현대 페미니즘에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젠더스터디’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의 하나로 앞으로도 그 영향력은 지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제2의 성> 제1권 ‘사실과 신화’ 에서 보부아르는 남성이 만들어 온 법과 제도 그리고 신화를 통해 여성이 어떻게 ‘제2의 성’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는지 역사와 신화연구를 통해 파헤치고 있고, 제2권 ‘체험’에서는 여자 인생의 초년기부터 말년기까지의 생리적, 심리적 과정을 끈기 있게 재구성하고 있다. 프랑스어 원서로 600여 쪽에 달하는 제2권의 이 엄청난 작업은 수많은 사실, 사례, 참고 자료에 의거하고 있는데, 여자들에게 주어진 세계를 여자들의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어 출간 6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성 독자들의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제2의 성>은 보부아르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주었지만 종종 그의 다른 작품과 활동을 가리는 결과를 낳곤 했다.
보부아르는 집필, 참여 지식인으로서의 활동, 여성해방 투쟁 등을 통해 여러 분야에 걸쳐서 업적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왕성한 저작 활동과 작품으로 현대 프랑스의 지성계와 문학 세계에 큰 족적을 남긴 탁월한 실존주의 작가라는 점을 최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삶이나 작품 모두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이 그 토대를 이루고 있고, <제2의 성> 역시 여성의 상황을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순,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5년 3월 16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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