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주보|2015.03.30] 이경석 교수 칼럼
[고전의 사계] 자유 향하는 기하학적 형이상학 스피노자의《윤리학》
▶ 별로 두껍지 않은 한권의 책이 철학의 대부분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면, 여러분은 “바로 이거다. 이거 하나면 철학을 뗄 수 있겠구나” 하면서 그 책을 읽으려 할 것인가? 아니면 왠지 전문성이 떨어질 것 같아 그 책을 기피할 것인가? 스피노자(1632~1677)의 『윤리학』이 바로 그런 책이다. 제목에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으며 실제로도 정의, 공리, 정리의 순서로 쓰여진 이상한 철학책. 이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윤리학’이라고는 하지만 1부는 형이상학, 2부는 인식론, 3부는 심리학으로 되어 있고, 4부 인간의 예속, 5부 인간의 자유에 이르러서야 윤리적 주제들을 다룬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다양한 주제들이 연관 없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제 1 원인인 신에 대한 정의로부터 5부 인간의 자유와 지복에 이르기까지 기하학적 방식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인간의 삶의 실천을 신에 대한 형이상학으로부터 인식론, 심리학 그리고 사회철학을 거처 도출해낸 것이다. 이러한 기획은 철학자의 꿈일까 아니면 과대망상일까?
23살에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파문을 당한 스피노자는 비록 파문의 조건인 자신의 이단적인 사상을 공식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유대교와는 사뭇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신관은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유대교적인 것에서 사물의 제1원인으로서의 신이라는 그리스적, 철학적인 것으로 전환을 하였다. 이러한 신관에 기초해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은 신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되면서도 신의 본질을 표현한다.
나아가 신으로부터 나온 사물은 신의 일부이고 신은 사물들에 내재적이다. 신은 곧 자연이며 인간은 이러한 자연의 일부다. 인간의 올바른 삶은 외부 사물들의 영향에 맞서 본질이 가지고 잇는 신의 모습을 지키고 사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철저한 민주주주의자였다. 그는 지적인 성장에 따라 인간의 완전성이 나누어진다고 하면서도 결코 귀족주의로 흐르지 않았다. 정치적 권리는 인간의 지적, 도덕적 완성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살려는 노력(코나투스)에 있고 이점에서 인간은 모두 동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모두의 코나투스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론은 『신학정치론』, 『윤리학』, 『정치론』의 순서로 이루어지는 그의 정치적 사유의 과정에서 ‘양도 없는’ 사회계약이라는 근대 정치이론가들과는 다른 그만의 독특한 이론에서 완성된다.
“자유인은 선악개념을 형성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스피노자와 니체의 공통점 중 하나는 욕심 많은 누이동생이 있다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죽자 누이동생이 유산에 욕심을 내서 스피노자의 하숙집에 찾아 와 유산 목록을 하숙집 주인에게 요구한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갚지 못한 빚이 있었다. 약값, 이발비, 하숙비 등. 누이동생이 보기에 유품을 팔아도 빚을 값기 어려울 것 같아 빚쟁이들에게 유품을 처분하도록 맡겼다. 그 결과 빚을 청산하기에 충분했다. 유품을 사려는 사람이 몰릴 정도로 스피노자의 명성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뿐이어서 결국 누이동생은 상속을 포기했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진정한 유산인 출판되지 않은 저작물들은 스피노자의 유언대로 유산목록을 작성하기 전 암스테르담의 친구에게 보내졌다. 자신의 학문적 자유를 단절되었던 가족관계에 다시 얽혀들게 하지 않으려는 스피노자의 심모원려였을 것이다. 이 점이 그가 니체와 다른 점이다. 니체의 유고가 그것을 독점한 그의 누이동생에 의해 얼마나 왜곡되었던가!
『윤리학』을 비롯한 스피노자의 글은 그가 죽은 그해 바로 출판된다. 섬세하고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위대한 정신은 이제 그를 탄압하던 교회, 정치세력들이 못 미치는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경석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5년 3월 30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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