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주보|2015.04.13] 오태호 교수 칼럼
[고전의 사계]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사랑의 광장’
▶ 2015년 4월은 잔인한 봄이다. 대한민국의 현재를 ‘광화문 광장의 노란색 물결’이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이 수몰된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정상화된 것이 없다. ‘세월호의 광장’ 앞에서 정상적인 부채감에 젖은 국민들은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날씨에도 불현듯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지고 참담한 고통의 눈물을 수시로 떨군다. 피어나지 못한 채 수몰된 영혼들이 여전히 구천을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사랑’의 대상은 오늘도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로, 붉은 진달래와 철쭉으로, 하얀 벚꽃과 목련으로 한반도의 곳곳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그래서 슬픈 봄이다.
‘광장’과 ‘실종’과 ‘사랑’이라는 열쇠어는 기실 1960년산이다. 55년 전 최인훈의 광장(1960)에서 그 표현들이 이미 분단의 질곡 너머를 상상하며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로 한반도의 문제를 상징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새벽지에 광장 원고를 게재하면서 “빛나는 사월이 가져온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자부한 바 있다. 그러면서 ‘광장’이 “운명을 만나는 자리”라고 재정의한다. 1960년 4.19 혁명이 열어놓은 ‘자유와 평등’의 해방감이 24세의 젊은 작가에게 ‘민주공화국의 보람’을 만끽하며, 운명처럼 광장이라는 기념비적 걸작을 탄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961년판 서문에서 작가는 인간이 광장과 밀실을 함께 호흡하는 존재임을 강조하며, ‘광장=대중의 밀실’, ‘밀실=개인의 광장’이라는 등식을 정립한다.
광장은 타자성과 대중성이 발현되는 공공의 공간이고, 밀실이 개인성과 은밀성이 강조되는 사적 공간으로 규정되면서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의 안과 밖이 연결된다고 파악한 것이다. 1973년판 서문에서는 《광장》이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심해의 숨은 바위에 걸려 다시는 떠오르지 않은 ‘이명준 잠수부’의 이야기라고 요약한다.
《광장》의 이야기는, 1953년 한국 전쟁이 휴전된 후 남북의 포로교환 때 남쪽이나 북쪽이 아니라 제3국행을 선택한 석방 포로 이명준이 해방과 분단, 전쟁을 살아낸 이야기로 요약된다. 작품 속에서 ‘광장’은 다층적으로 활용된다. 처음에는 남한이 ‘정치와 경제의 속물적 광장’으로 호출되면서 비판되고, 이후 ‘새로운 광장’의 모델로 ‘이북’이 선택되지만 곧바로 ‘잿빛 공화국의 과장’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렇게 남북에서 ‘이데올로기적 광장’의 모색이 좌절되고, 남쪽의 윤애와 북쪽의 은혜를 만나면서 ‘광장’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밀실형 광장’으로서 ‘원시의 작은 광장’으로 축소된다. 이어 ‘마지막 광장’이자 ‘삶의 광장’으로 변주되다가 ‘푸른 광장’으로서의 바다로 인식된다. 그리하여 작품 마지막 부분에서 ‘광장’은 갈매기로 환유되는 은혜모녀(은혜와 뱃속의 딸)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바다가 되어, “제 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으로 인식된다. 결국 남과 북만이 아니라 제3국행마저도 거부한 채 ‘푸른 광장’인 바다로 투신한 이명준의 자의적 실종은 ‘사랑의 광장’이라는 유토피아적 공간으로의 상상적 탈주인 셈이 된다.
1960년산 《광장》은 2015년 현재에도 여전히 ‘광화문 광장의 유효성’으로 그 현재적 의미를 확장한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 주권자인 국민을 재난으로부터 구호하지 못한 끔찍한 현실이 ‘《광장》의 현재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제 정신으로 ‘광화문 광장의 노란 물결’을 ‘푸른 바다의 광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1960년에 실종된 이명준은 2015년의 대한민국호에게 묻고 있다. ‘당신들의 광장’은 안녕하냐고. 그 눈부시게 푸른 광장인 ‘노란 바다’ 앞에서 ‘당신들의 사랑’은 어디로 실종되었느냐고. 관념적이고 철학적으로, 아니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묻고 있다.
오태호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5년 4월 13일자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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