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주보|2015.05.25]고원 교수[후마니타스칼리지-대학주보 공동기획] 고전의 사계(54)
인간들을 이야기하다, 헤로도토스의『역사』
▶ 리디아의 왕 칸다올레스는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지극히 사랑했다.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를 좋아했던 칸다올레스는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 기게스에게 왕비의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했고 급기야는 그녀의 벗은 몸을 몰래 훔쳐볼 것을 제안했다. 왕의 거듭된 성화에 밀려 기게스는 왕비의 침실에 숨어들었고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훔쳐본 뒤 빠져나왔다. 기게스의 도망가는 뒷모습을 본 왕비는 다음날 그를 불러 정숙한 여인의 몸을 볼 수 있는 자는 남편 밖에 없음을 강조하면서 기게스가 스스로 자결하던가 아니면 왕을 죽이고 자신의 남편이 되던가 둘 중 하나를 택하도록 요구했다. 기게스는 칸다올레스를 죽이고 새로운 왕이 되어 왕비를 자신의 아내로 맞았다. 리디아인들은 왕을 살해한 기게스에 대해 분노했지만 델포이의 신탁이 기게스를 지지하자 어쩔 수 없이 그를 새로운 왕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신탁은 기게스가 신관들에게 은밀하게 제공한 금은의 덕이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역사》(BC 450-420 추정)는 리디아의 메름나다이 왕조를 창시한 기게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기게스는 훗날 플라톤의《국가》에도 등장하지만 신화처럼 묘사되는 플라톤의 이야기에 비해 헤로도토스는 리디아 역사의 일부분으로 기게스를 설명했다. 신화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만을 이야기하는 헤로도토스의 방식은 당시 매우 새로운 것이었으며 그래서 키케로는 그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역사》의 본래 주제는 페르시아와 그리스 국가들의 전쟁이지만 실제 내용은 잡다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전쟁에 대한 설명보다 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 주변 상황 심지어 당시 사람들의 문화와 세계관 등 고대세계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지식만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역사》는 아주 산만한 책이겠지만 특정 사건에 국한하지 않고 고대 서구세계를 이야기하는 책이라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오히려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 《역사》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여러 생각을 던져준다. 잘 알려진 이야기 하나를 들어보자. 리디아의 마지막 왕 크로이소스는 고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다. 그는 그리스의 현자 솔론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당연히 자신일거라 생각하며 질문했지만 솔론의 대답은 왕의 기대와 달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죽을 때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폐하께서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물음에 답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 죽기 전에는 행복하다고 말하지 마시고 단지 운이 좋았다고 하소서."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크로이소스는 후일 페르시아 키루스왕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리디아는 멸망한다.
그렇다면 크로이소스의 리디아를 정복하고 세계적인 대제국 페르시아를 건설한 키루스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지금도 남아있는 키루스의 무덤에는 그가 남긴 짧은 유언이 새겨져 있다.
"오! 인간이여,그대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나
나는 키루스,바로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이로다.
내 무덤을 덮은 한 줌의 흙 때문에 나를 부러워하지 말지어다."
고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5월 25일자 대학주보
조회 : 6,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