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라는 나라는, 다른 건 몰라도, 시를 쓰고 읽는 일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나라도 범접하지 못할 대단한 기록을 가진 시의 공화국이다. 매년 몇 백여 권의 시집이 출판되고 20세기를 통틀어 백만 권 넘게 판매된 시집이 여러 권에 달했던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 말고는 없다. 현재의 지구 문명을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영어권에서도, 같은 문명권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시집이 이렇게 활발하게 출판되고 읽히는 일은 없었다.
한국에서 시인은 존경받는 예술가이자 정신적 스승이다. 이 특별한 시의 공화국에서,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 특히 시의 길에 갓 들어선 젊은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 김수영이 바로 그다.
시인이 작고한 이후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김수영 시인의 영향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젊은 시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수영의 시에 어떤 마력이 있어 젊은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김수영은 존경받는 시인을 넘어 한국 지성의 표상이다. 김수영은 예술가와 지식인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모범을 보여준다. 김수영이 생각하는 예술가란 인간이 가진 꿈과 감정을 그려내어 현재의 삶을 넘어선 새로운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보다 나은 내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지식인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에 대해 김수영만큼 선명한 원칙을 제시한 한국의 지식인은 없었다.
예술가의 표현에 제약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인간이 가진 꿈과 감정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김수영이 언론의 자유를 위해 절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에 발굴된 김수영의 미발표 원고를 보면 심지어 ‘김일성만세’라고 표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언론의 자유가 시작된다고 썼다. 4·19 혁명 직후 쓴 그 시는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충격적이다. 그가 꿈꾼 절대적 자유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도 분단시대의 새장 속에 갇힌 새에 불과하다.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살아있고 말도 안 되는 여러 가지 사회규범이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지식인이다. 그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론이고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고민했다. 그는 일체의 타협이나 위선을 배격하고 극단적인 정도로 정직성을 추구했다. 이러한 자세는 한국과 같이 사회역사적 격변이 심한 나라에선 매우 불리하고 때로는 위험한 처신 방법이다. 하지만 김수영은 그러한 불리와 위협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과 정의를 위해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사실을 정직하게 전달하고 옳고 그름을 전후좌우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말하는 것, 이 기본적인 기능이 말살되어 있는 사회는 죽어가는 사회다. 그런 사회를 향해 “시여 침을 뱉어라”고 그는 절규했고 “시는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예술이 아름다운 것만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김수영의 이러한 태도는 충격이었고 그 충격은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신선하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대의 흐름에 타협하지 않고 진정한 삶의 길을 찾아가는 내면적 기율을 지킨 스승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드물다. 그런 정신적 스승을 갈구하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김수영은 피해갈 수 없는 하나의 뚜렷한 이정표이자 정신적 멘토이다.
세상의 위협에 주눅 들은 젊은이들에게 당당한 호연지기를 주는 글이 김수영의 시와 산문이다. 젊은이여, 꾀죄죄한 늙은이들을 멀리하고 김수영을 읽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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