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템플 스테이를 가려고 했는가? 템플 스테이를 가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왜 가기로 했을까? 원래 집안이 불교를 믿어서 간데도 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가장 일반적인 대답인 조용한 우리나라 고유의 사찰 문화 속에서 평온을 찾고 싶은 마음에도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새로운 경험. 학원을 가고, 과외를 가고, 학교를 가고, 집을 가고, 그 뻔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혼자 하고자 하기엔 벅찬 경험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아레테에서 주최한 템플 스테이는 내게 좋은 기회가 되었다.
첫째 날, 우린 하루 일과를 정리한 저녁에 모여 템플 스테이를 하는 마곡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다들 들떠서인지 수다소리가 버스를 한가득 채웠지만 나는 같이 오기로 했던 조원들이 이런저런 일이 생겨 다들 오지 못하게 되서 혼자 있게 되니 이런저런 걱정을 하게 됬다. 일정표는 애시당초 처음부터 나와 있었지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오, 채식 식단, 조용한 분위기, 그 모든 게 내겐 걱정거리었다. 하루를 올곧이 절에서 생활해야만 하는데 과연 저것들에 적응 할 수 있을까- 고민에 휩싸여 도착한 어두운 적막만이 휘감은 마곡사는 그런 내 고민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마곡사까지 가는 어두컴컴했던 길은 드문드문 있는 가로등 몇 개에 의지한 체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그런 길이었다. 그런 길을 따라, 물소리를 따라 도착한 마곡사에서 우린 새로운 장소에 머물게 되었다는, 그 정신없음과 함께 같이 활동할 조를 정했고 조원들끼리 인사하고, 마곡사 뒤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첫날을 보냈다.
둘째 날의 기상은 의외로 쉬웠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스탭분이 방에 불을 켜자마자 일어날 수 있었고 그 길로 바로 씻고 아침 예불을 드리러 갔었다. 예불 후 참선, 공양, 108배, 산책, 스님과의 대화, 강연과 같은 사찰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평소와 다른, 너무나도 일찍 일어나서 길었던 하루를 그득히 채워줬다. 많은 프로그램들 중에 기억에 유난히 남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산책이었다. '자연의 품에 안기다.' 그 이외의 말로는 더 이상 표현 할 수 없는 마곡사의 풍경. 모든 프로그램 중 가장 많았고 가장 길었던 시간인 산책 시간들은 그 풍경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을, 그리고 많은 생각을 나눌 시간을 줬다. 안개와 수많은 생명을 품은 푸르른 산 아래에서, 모든 걸 흘러 넘어가줄 물 옆에서, 고민거리들을 하나 둘 씩 혼자서, 혹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풀어나가는 것. 템플 스테이가 아니었으면 얻기 힘들었을 소중한 경험이었다. 두 번 째는 비가 내려 산행을 포기하고 급작스럽게 준비된 프로그램이었던 '첫인상 물어보기'였다. 둘째 날은 칠월칠석이여서일까, 포근한 비가 적당히 내렸었다. 산책하기엔 좋았지만 산행에 비는 좋지 않기에 산행을 포기하고 사찰에서 준비해준 프로그램이었는데 급하게 준비된 것에 비해 굉장히 기억에 남았다. 첫인상은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본능적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되는 시각이라 하지 않는가. 그런 첫인상을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또 말해면서 아주 짧은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과 교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첫인상에 대한 짧은 소감들을 보며 '아- 내가 이렇게 다른 사람 눈에 비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종종 친구들에게 "내 첫인상이 어땠어?" 라고 물으면서 친구들끼리 추억에 잠기기도 하는데 그런 것과는 또 색다른 느낌이기도 했다. 세 번째는 '짝'과 조별 프로그램이었다. 일단 조별 프로그램이란 점에서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내가 들어준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서로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나와 다른 시각을 통해 내 고민을 들어본다는 것.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끌린 곳이 템플 스테이 었지만 의외로 시끌벅적한 조별 활동과 뽑기로 정해진 1대 1 대화 프로그램이었던 ‘짝’은 아이러니 하게도 나 자신에 대해 저 알아가게 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경험,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셋째 날,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템플 스테이의 마지막 날을 108배, 울력, 산책과 같은 프로그램들로 마무리 지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을 위해 준비된 산책이었지만, 다들 산책보단 그 전날 만나게 된 사람들 끼리 모여 소소하게 템플 스테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첫째 날의 걱정은 어디로 날려버렸는지, 사찰에서 이렇게 생활하는 것도 좋은 거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틀 동안 헤어져있었던, 그리고 잊고 있었던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들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됬다.
템플 스테이를 하면서 정말 사찰에서 이렇게 보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조용하고 고즈넉하며 자연 속에서 미련 없이, 고민 없이,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그런 삶 말이다. 그런데도 소위 속세라 불리우는 현실로 돌아와 휴대폰을 켜서 밀린 연락들을 확인하고, MP3 속 좋아하는 밴드들의 노래를 듣는 순간 ‘아, 이래서 속세에서 뜬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출가라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찰에서 지내게 된다면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밴드들의 공연도 못가게 될 것을 생각하니 순간 사찰에서 몇 달간 지낼 생각을 한 내 자신이 놀라웠다. 그리고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생각은 지금 이 순간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순간, 내가 여기에서,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를 듣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내가 소속된 밴드에서 연주를 하고, 공연을 보러가고, 같은 학과 동기들과 놀고, 가족들과 같이 밥을 먹는 이 순간 순간이 소중해 졌다.
결심하기 힘든 짧은 여행일 수도 있다. 전혀 다른 문화, 전혀 다른 공간에서 짧은 시간이더라도 하루 종일 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저 새로운 경험을 위해 떠났던 아레테의 템플 스테이는 경험 뿐만이 아니라 인연, 그리고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 무언가 까지 안겨 줬다. 언젠가 템플 스테이를 갈지 안 갈지를 갈등한다면, 이 글을 기억하고 한 번 과감한 선택을 해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내게 이런 좋은 경험을 하게 계기를 만들어준 경희대학교의 아레테에 정말 감사하다.
이 2박 3일의 작은 여행이, 내게 이렇게 큰 선물을 안겨 주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기에.
글. 물리학과 12학번 김현지
사진. 아레테 운영진 신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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