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북 콘서트를 마치고

▶ ‘북 심포지엄’으로 시작한 이 자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열린 ‘북 콘서트’로서 결실을 맺으며 성공적으로 끝났다. 인문학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나는 평소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취지와 내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ARETE 북 콘서트가 개최된다는 플랜카드를 보고 주저없이 참가 신청을 했다. 청중들 앞에서 책의 내용을 놓고 토론할 4명의 패널을 뽑기 위한 면접을 봤다. 책은 비교적 친숙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막상 교수님들 앞에서 생각을 이야기 하려고 하니 긴장감에 온몸이 떨리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결국 역량이 부족하여 패널로는 선발되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이렇게 후기를 쓸 기회를 얻게 되어 붙은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패널은 4명이고 나는 혼자서 후기를 쓰니까 나름대로 특별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북 콘서트의 청중으로서 참여하게 되었을 때 마치 커다란 산소통을 하나 얻은 기분이었다. 1학기 때 신입생세미나 멘토님을 보고 배웠던 소중한 교훈 때문이다.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대학생활을 하는 것. 사실 기회가 없어서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기회가 너무 많은데도 무관심하거나 어쩔 줄 몰라서 기회가 ‘안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2학기 때 북 콘서트를 만남으로써 가장 어려운 첫 시작을 끊을 수 있었다. 답답했던 숨통이 탁 트이는 순간이었다. 물론 지나가다가 호기심에 들른 사람도 청중으로서 참여할 수 있고, 나도 똑같은 청중에 불과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해야한다, 하고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내게는 ‘북 콘서트’가 소중한 경험이자 기회였다. 그렇게 북 콘서트는 내게 적극적인 대학생활의 가능성과 활력을 동시에 불어넣어 주었다.

드디어 북 콘서트를 하는 날, 면접 때 뵈었던 교수님들과 STAFF 분들께서 친절하게 나를 알아봐주셨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괜히 나까지 긴장됐다. 특히 청중으로 참여하신 몇몇 교수님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6시가 되자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북 콘서트의 시작을 알리는 도입 순서가 있었다. 우리가 다루는 책의 내용과 저자 소개, 주제를 간략하게 개괄해보는 시간이었다. 깔끔한 PPT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준 덕분에 토론의 취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울러 북 콘서트의 품격 있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도입부가 끝나고 사회자 역할을 맡으신 서동은 교수님의 진행으로 토론이 시작되었다. 패널 네 분들이 자기소개를 하는데 풍기는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모두 빈틈없는 논리로 단단히 무장한 듯 보였다. 이면에 숨어있는 긴장감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니 ‘만일 내가 패널로 선발되어 나갔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 아쉬움과 안도감이 절묘하게 교차했다.

‘북 콘서트’는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주요 쟁점들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 시장관계에 의한 지배적인 상품화 현상이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 그러한 예로 대리 줄서기가 시장에 의해 대체될 경우 어떤 비시장적 규범과 가치가 희생되는가?
* 인센티브가 변질시키고 밀어내는 태도와 규범의 도덕적 가치는 무엇인가?
* 벌금의 요금화 현상이 인간적 가치를 어떤 식으로 변질시켜 놓았는가?

이러한 핵심 쟁점들이 토론의 맥락을 구성했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모두 포괄할 수는 없지만 결국 다양한 모든 논쟁들은 ‘시장의 도덕성’을 겨누고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시장에 본질적으로 내재해 있는 도덕적 딜레마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날카롭게 비판할 보다 날카로운 칼이 몇 개 필요했을 뿐이다. 북 콘서트는 그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청중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은 성공의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었다. 청중은 학생과 교수님을 가리지 않고 쉴 틈 없이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청중과 패널 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토론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균형을 이루었다. 자연스럽게 모두가 몰입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라고 편안하게 지켜만 볼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반드시 청중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극도의 긴장감으로 내몰았다. 필수사항은 아니었지만 내 나름대로 작은 성의로 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그 마음은 나도 토론의 흐름에 합류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조급함은 점점 커져서 진정시키기 힘들 정도까지 다다랐다.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인지 지적 능력이 아직 부족해서인지 질문 내용을 선뜻 정할 수 없었다. 밀려오는 지적 파도에 허덕이며 당황하고 있는 나를 위해 중간에 ‘돈’에 대한 내용으로 개사해 부른 가요 공연이 있었다. 덕분에 자칫 딱딱할 수 있었을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북 콘서트의 색깔이 한결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안도의 순간도 잠시, 마지막 주제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드디어 질문을 하나 찾았다!’ 승리감에 손을 막 들으려던 찰나였다. 불행하게도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밀려 불가피하게 토론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고 말았다. 시간에게 마지막 질문의 기회를 박탈당한 것 같아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골똘히 생각에 잠긴만큼 무언가를 얻어간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슴이 꽉 찬 느낌이었다. 단순히 뇌에 주름이 잡히는 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깨달음’의 기쁨이 있었다.



북 콘서트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 표현하고 나 역시도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의사소통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의 가능성이었다. ‘북 콘서트’는 소중한 대학생활의 가치를, 대학생으로서 가져야할 삶의 자세를 되새겨주었다. 다음에는 안경만 걸치고 시크하게 앉아있는 곰돌이의 모습이 아니라 진짜 마이클 샌델 교수님의 모습을 ‘북 콘서트’에서 보고싶다.


황하청, 원예생명공학과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