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마니타스칼리지 토론집단 ‘아레테’ 카페에 우수발제문 선정 발표가 떴다는 소식을 다른 운영진으로부터 접수했다. 재빨리 확인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취재가 아니던가! 그 많은 훌륭한 발제문 중 영예의 포상은 누구에게로 간 것일까? “독서토론 이수민 조장님 조 장수정씨?” 논문 서문처럼 현란하고 논리적으로 전개된 그녀의 발제문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레포트도 아니고 이런 성의를 보이다니! 나는 너무나 궁금해졌다. 도대체 장수정은 누구인가? 남학생일까 여학생일까? 문화상품권 3만원의 주인공의 몽타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나는 재빨리 그녀와 컨택에 들어갔다. 서로 바쁜 일정 속에 겨우 그녀를 만나볼 수 있었다. 어느 아늑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와의 이야기. 경제학과 09학번 장수정 학우와의 ‘아레테’한 대화. 당신을 그 대화에 초대한다.
H 씨 : 만나서 반갑습니다. 바쁜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발이 조금은 오그라들지도 모르지만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녹취 들어가겠습니다. 하하.
수정 : 헉. 부담스럽네요. 저는 제 소개할 때 그냥 “경제학과 09학번 장수정입니다.”라고만 하는데요. 저는 현재 4학년이고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답니다. 부끄럽네요.
H 씨 : 아레테에 지원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수정 : 지난 1학기에는 중핵교과목 ‘인간의 가치 탐색’(이하 인가탐)을 듣고 이번 학기에는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하 우사세)를 듣고 있는데요. 같은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있어요. 인가탐은 제가 대학 4년 다니면서 가장 재미있게 들은 교양 과목이에요. 과목 자체의 매력뿐만 아니라 교수님의 강의력에 매료되어 우사세도 같은 교수님의 과목을 듣고 있어요. 교수님께서 지난 학기 초 ‘아레테’를 소개해주시면서 너무 좋은 프로그램인데 왜 학생들의 참여가 많이 안 이루어지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좋아라 하는 교수님께서 그렇게 추천해주시는데 안 해볼 수 없었죠.
H 씨 : 현재 아레테 활동에 대해서는 만족하시나요?
수정 : 네! 저희 조는 서로 참 잘 만났다는 말을 많이 해요. 성비율도 딱 맞고 종교적으로나 전공으로나 편차가 다 있어서 서로 다른 다양한 관점을 공유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H 씨 : 잠깐만요. 지금 4학년이시고 경제학과이면 학교 전공 쫓아가기도 버거우실 텐데요. 취업 준비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아레테를 하실 여력이 충분치 않으실 것 같은데, 취업 준비생이라면 객관적으로 독서와 토론보다는 시사 토론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법한데 왜 독서와 토론을?
수정 : 아. 저는 공기업을 가려고 준비 중인데 취업에 대해서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취업 시 요구되는 시사적 사고나 토론기법은 해당 기업의 관점을 미리 파악하고 그것에 맞춰서 답변을 준비해가면 되니까 굳이 시사토론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다 장단점이 있는 것이겠지만 저는 독서와 토론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는 편이거든요.
H 씨 : 제 친구도 공기업을 준비하는데 꽤 힘들다고 하던데요. 능력이 충분한 친구인데도 요즘에는 자신감을 많이 상실했던데 수정씨는 자신감이 충만하신데요? 대단하십니다. 이미 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수정 : 아니에요! 근자감이에요. 근거 없는 자신감... 막 이러고.
H 씨 : 근자감? 와. 처음 들어보는데요?
수정 : 하하. 그걸 모르시다니. 세대 차이 나네요!
H 씨 : 무슨 세대차이에요? 몇 살 차이도 안 나는데요! 저한테 불리한 쪽으로 가고 있으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제가 발제문 읽으면서 ‘너무 잘 썼다. 이것은 분명히 자기과시용이다. 본인이 누구인가 보여주기 위해서 쓴 것이 분명하다’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무슨 논문 인줄 알았어요. 얼핏 보기만 해도 독서량도 방대하실 것 같고, 글쓰기를 많이 하시는 분처럼 느껴지던데요. 평소 글쓰기 연습을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수정 : 저는 항상 책을 읽으면 제 블로그에 리뷰를 올려요. 재미있게 읽으면 더 열심히 쓰려고 하겠죠? 하지만 보여주기용은 아니에요. 단순히 기록용이죠. 읽었을 때의 기억을 나중에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쓰는 것뿐이에요.
H 씨 : 블로그를 운영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죠?
수정 : 한 5년 정도?
H 씨 : 엄청 오래되셨네요? 콘텐츠의 양이 장난이 아니겠어요! 발제문을 보아하니 본인만의 글쓰기 체계를 잡아 놓으신 것 같더라고요. 인용구로 시작해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시는 등 말이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수정 : 아무래도 오랫동안 리뷰를 하다 보니 글을 쓸 때는 그런 게 있긴 있어요. 하지만 책을 읽을 때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분, 공감한 부분을 포스트잇으로 표시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목차나 옮긴이 후기 읽고 시작하는 것 빼고는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읽을 때나 글을 쓸 때나 스스로에게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쓰는 것은 자유롭게 하고 수정에 더 심려를 기울이는 편이에요. 출판사 블로그 같은 데 가보면 논문 쓰는 방법이라 들까 글 잘 쓰는 방법을 추천해주는 곳이 많아요. 그런 데서 많이 참고하는 편이지요.
H 씨 : 특별하게 좋아하는 책이나 장르가 있으신가요?
수정 : 없어요. 중구난방이에요. 특별하게 가리지는 않아요. 저는 원래 국제캠퍼스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어요. 이후 서울캠
퍼스 경제학과로 전과했어요. 굳이 생명공학에서 양분시키자면 저는 자연스럽게 인문사회나 자연과학 둘 다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책을 가리는 게 어려워진 것 같아요. 예전에 ‘도시와 인간의 삶’이란 교양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어떤 장소의 성격을 분석하는 접근 방식이 너무 재밌었어요. 이후로도 그 쪽 분야에는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책을 찾아 읽는 편이긴 해요.
H 씨 : 장르를 망라하고 여러 가지 책을 읽으시다니 부럽네요. 저는 비슷한 분야만 골라보는 버릇이 있어서 시야가 좁아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때가 있는데요. 시중에 나오는 책이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같은 분야라도 베스트셀러도 한두 가지가 아니고요.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떤 책을 고르는가라고 생각하는데, 책을 고르는 방법이랄까요? 있으신가요?
수정 : 과학 쪽은 좋아하는 번역가가 있어요. 그 분 것은 무조건 봐요. 인터넷 서점에서 좋아하는 리뷰어가 있어서 그 분께서 글 올리시는 것 보고 찾아봐요. 그게 아니면 인가탐 책 뒤에 보면 어디서 발췌했는지 나오잖아요? 크게 그 정도에서 참고해서 골라 읽는 것 같네요.
H 씨 : 저와는 레벨이 너무 다르시네요. 역시... 저는 그냥 끌리는 데로 읽는데...
수정 : 근데 베스트셀러는 잘 안 읽어요. 책은 항상 묵혔다가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분위기에 휩쓸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H 씨 : 그럼 요즘 많이들 읽으시는 마이클 센댈의 책은 안 읽어보셨나요?
수정 : 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조금 읽다 말았어요.
H 씨 : 오. 블로그를 공개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직 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분명히 다른 학우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수정 : 그러고 싶기도 하지만 리뷰를 쓰다보면 제 개인적인 의견이 안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제 사생활이 많이 들어가 있기도 해서요.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거절하겠습니다. (웃음) 거기다 공유할 정도로 훌륭한 글은 없는걸요.
H 씨 :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나 책 읽고 리뷰를 많이 하시는 것을 미루어 보아 완전 문과 성향이 짙어 보이시는데요. 이렇게 인문학적 사고를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왜 경제학과로 들어가셨는지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수정 : 당시 생명공학은 취업이 잘 안 될 것이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한 것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에요. 이과여서 수학을 했다보니 수학을 좀 더 할 수 있는 과가 어디일까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H 씨 : 발제문에 대해서 얘기해 볼게요. 발제문이 맥스웰 맥콤즈의 ‘아젠다 세팅’에 관한 것이었어요. 발제문을 읽다 보니 아젠다 세팅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셨더군요. 발제문을 읽으면서 공감이 갈 수밖에 없으면서도 왜 우리가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에 초점이 맞출 수밖에 없을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는데요.
수정 : 저는 정보를 받아들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비판적 수용’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정보를 인간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사고의 확장을 방해하는 느낌이랄까요? 안타깝게도 언론은 태생적으로 아젠다 세팅을 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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