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에 다시금 꽃이 필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 마무드 압바스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유네스코 본부 대회의실에 입장하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참석자들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기쁜 표정의 마무드 압바스는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청중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최근의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미루어볼 때, 그의 감사는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에게만 전한 인사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10월말, 195번째 회원국으로써 팔레스타인의 국기를 유네스코 본사에 게양하기까지 그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간 수많은 팔레스타인 국민들과 지금 이 순간에도 희생하고 있을 자국 군인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말이 그 앞에 함축된 인사였다.
사실, ‘팔레스타인’이라는 원래 이름은 나라의 이름이 아닌 지역의 이름이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지역은 원래 서쪽의 지중해에서 동쪽의 요르단 강까지, 북쪽의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에서 남쪽의 가자 지구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지역에 아주 오래 전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주변 강대국들의 정세와 변하는 세계 환경에 따라 전세계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팔레스타인지역에는 주변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이 흘러들어오고 되었고, 그들은 팔레스타인지역의 토착민족이 되었다. 물론 이 지역에 남은 유대인들도 있었지만 종교차이로 인해 유대인들과 아랍인 사이에서의 분쟁은 거의 없었다고 본다. 이곳은 특별한 나라가 세워진 것도 아니었고 역사의 흐름과 함께 여러 강대국들의 손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2차 대전이 한창일 무렵,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의 민족지도자들은 영국과 협상을 통하여 그들의 막대한 재산을 전쟁비용으로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종전 후 옛 유대인들의 땅에 이스라엘 건국을 약속받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 2차 대전이 끝나자 당시 1947년, 승전국이었던 영국 정부가 이스라엘에게 그들 나라의 건국을 승낙하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곧이어 국제사회에 독립국으로의 인정을 요청한 팔레스타인에게는 ‘반대도 승낙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을 취했고 그 사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영국과 협상 중에 각지에 흩어진 유대인들에 대한 팔레스타인 땅으로의 강제 이주를 감행하게 된다. 당시 자연재해와 기근으로 생활이 어려웠던 토착민족 아랍인들(당시에 그들은 팔레스타인인이라기보다는 아랍인이라고 불리어졌다)은 살기위해 유대인들에게 땅을 팔 수밖에 없었던 상태였고 그렇게 이미 상당부분의 땅이 유대인들의 손에 넘어가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당시 홀로코스트와 점점 늘어나는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크게 확산되고 있는 사건이었다. 실제로 홀로코스트는 20세기에 일어난 대규모 살인 가운데 가장 극적이자 잔인한 사례였고 근대화 열풍에 놓여있던 유럽의 근대적 산물이 인간의 야만성을 효율적으로 표출하게 해주는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당시 전 세계 언론은 이들의 비참한 대량학살에 대한 기사들로 매일 가득 넘쳐났을 터였다. 게다가 홀로코스트의 잔혹한 사진들과 생생한 증언을 통해 유대인들은 ‘세계시민의 차가운 방관 속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로 각인되면서 그와 동시에 ‘나치정권은 악, 유대인들은 선’이라는 공식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나가고 있는 터였다. 이 모든 내용은 사건 자체의 잔혹성에서 나온 것도 크지만, 당시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의 중요 요직을 꿰차고 있던 유대인들의 힘도 어느 정도 발휘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영국으로부터 이 문제의 사안을 넘겨받은 UN은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아랍민족에게 각자의 나눠진 지역에서 살 것을 제안하게 된다. 당연히 유대인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아랍인들은 거절한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전체가 그들의 토착지역이었고 유대인들은 이곳에서의 거주가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전쟁이 터지게 된다. 아랍인들에 비해, 유럽 각지에서 막 흘러들어온 유대인들은 조직적이었고 교육이 잘 되어있었다. 이스라엘의 사안 전까지만 해도 세계 관심의 불모지였던 팔레스타인지역의 아랍인들은 가난에, 궁핍한 생활에, 교육이라는 건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였을 뿐이다. 제대로 된 정부조직 하나 없는 상황인 아랍인들에 비해 유대인들은 바로 정부체제를 만들고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형성하게 된다. 이들은 그들의 거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아랍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무장된 군대를 내세워 제대로 된 총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아랍인들을 향해 전쟁을 시작한다. 이 불평등한 관계에서 시작된 전쟁은 말 그대로 제2의 홀로코스트와 같다. 마치 ‘나도 당해봤으니 저희도 당해봐라’하는 식이다. 유대인들은 수많은 아랍인들을 학살하고 그들을 황무지로 몰아낸다. 오랜 세월 살아왔던 동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난민신세가 되어버린 아랍인들은 독립된 국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지만 이미 텐트조각과 가축한마리가 전부가 되어버린 그들은 국제사회에 이의를 제기할 어떠한 힘도 가지지 못했다.
한 치의 관용이나 타협점도 남기지 않겠다는 양측의 입장은 숱한 전쟁을 낳았고,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UN의 결의사항마저 무시한 채,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해나갔다. 더욱이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은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하에 자행되는 이스라엘 군대의 행패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잔혹한 테러집단으로만 치부해버리고 (정말 끈질기게도) 외면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뻔하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영원한 분쟁으로 남아있어야만 강대국들에게 이득을 남겨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지역에 매장되어있는 천연자원은 미국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노다지와 같고, 현재 분쟁 상황을 유지시킴으로서 석유와 무기장사로 잇속도 차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어엿한 중재자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단순한 약육강식의 원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이 끈질기고도 지겨운 분쟁은 이 놀음판을 만들어놓은 강대국들의 입장에 변화가 우선적으로 행해져야만, 해결될 기미가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 나는 아주 희망적이다. 그것은 아랍의 봄으로 요즘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국가들의 움직임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보이기 때문이다. 친미적이었던 이집트의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고 그 열기가 주변국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됨에 따라 미국과 UN은 언제까지나 현 상황을 외면할 수만은 없으리라고 본다. 심지어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UN 전체 이사국 15개국 가운데 9개국이 팔레스타인의 독립국 인정을 지지한다는 견지를 내놓음에 따라 안 그래도 자국의 금융문제나 군사문제로 제 갈길 가기 바쁜 미국이 이전과 같은 밍밍한 태도로 자신들의 법안을 강행처리했다간 더 큰 문제에 직면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은 몇 년째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다.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손길을 건네주고, 자신들을 도와줄 용기를 내달라고 말이다. 아직 팔레스타인에도 어린이들은 있고 젊은 세대도 있다. 아직 그들이 있기에 팔레스타인의 미래는 무척 밝다. 세대가 거듭된다면, 다음 세대에는 서로를 용서하고 이전세대가 하지 못한 화해를 해나갈 것이다.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 없는 팔레스타인에게, 이제는 국제적으로 높아진 위상의 나라 국민으로서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사회의 일원으로서 작지만 용기 있는 목소리를 모을 때라고 생각한다.
영어학부 2학년 양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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