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4일,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프레드 달마이어 교수님을 모시고 “유교와 세계문명”이라는 주제 아래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에서 콜로키엄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이 논평이 『논어』(論語)의 첫 줄과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공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서양에서 온 공자(孔子)

프레드 달마이어(Fred Dallmayr, University of Notre Dame) 교수는 팔순의 나이에도 뜨거운 열정을 과시하며 강연의 마지막을 위와 같은 문장으로 마쳤다. 이 말은 동양철학을 공부해 온 내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달마이어 교수가 인용한 공자의 말은 공자가 70이 넘어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측면 세 가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었고, 『논어』의 첫 구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온 노학자(老學者)가 강연의 말미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매우 적절하고 잘 어울려 보였다.

게다가 달마이어 교수의 강연 주제는 “유교와 세계 문명”(Confucianism and World Civilizations)이었다. 그는 유엔에서 채택했던 ‘문명 간의 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고, ‘세계 대중 포럼―문명 간의 대화’ 라는 국제적 민간단체에서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자이다. 달마이어 교수는 그러한 자신의 최근 관심과 경험을 바탕으로 ‘문명들 간의 대화’를 청하기 위해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두 번째로 방문했다. 내게는 그가 벗을 찾아 먼 곳에서 찾아온 서양에서 온 공자였다.

그가 발표한 “유교와 세계주의”(Confucianism and Cosmopolitanism)는 문명 간의 대화를 “상상력이 넘치는 창조적 재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역동적 향연”이라고 표현한다. 과거 동양과 서양은 제국주의의 관점에서 서로를 비추어 보았으며, 서양에게 동양은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는 고립주의로, 동양에게 서양은 산업근대화를 이끌어 나간 선망의 모델로 비춰졌다. 그러나 달마이어 교수가 요청하는 ‘대화’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지배가 아니라 세계화의 시대가 요청하는 역사적인 의무이다. 과거 기독교는 그리스 로마의 배움의 과정을 거쳤으며, 르네상스 인본주의는 이슬람교와의 대화를 통해 풍성해졌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불교와 도교, 유교적 전통 간의 문화적 교류는 오늘의 동양 문명을 탄생시켰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본다면, “급속한 세계화의 시대인 오늘날, 대화적 연대는 그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거의 강제적인 의무에 가깝다.”




유교와 중국

달마이어 교수는 최근 중국의 학자들이 제기하는 유교에 대한 재해석의 사조를 몇 가지 소개하면서 현대적인 유교의 지형도를 소개하였다. 현대신유가(現代新儒家)를 대표하는 리우 슈시앤(劉述先)과 리앙 수밍(梁漱溟)은 과거 왕조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제도적 유교와 보편적 가치를 담지한 유교를 구분하고 있다. 또한 캉 시아오구앙(康曉光) 같은 학자는 중국 사회의 유교화와 중국 공산당의 유교화를 주장하는데, 이는 “유교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신하여 국가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유학자들이 공산당 간부를 대신”하게 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달마이어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중국학의 재평가와 중국문화의 재건을 위한 성명서를 발의했던 탕 쥔이(唐君毅), 장 쥔마이(張君勱), 머우 쫑싼(牟宗三), 쉬 후꾸안(徐復觀)으로, 이들 중국의 네 학자가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하고자 했던 시도를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이들의 계보를 잇는 윙칫 찬(陳榮捷), 뚜 웨이밍(杜維明) 등이 강조하는 유교의 인(仁)의 덕목과 그 실천적 가치로서 ‘서’(恕)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자신이 서고 싶으면 남을 먼저 세워주고, 자신이 이루고 싶으면 남을 먼저 이루게 한다. 나와 나 가까이 있는 것을 알고 이해함으로써 그에 유추하여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 인의 시작이며 인을 실현하는 올바른 방향이다.”

이 문구는 『논어』의 ‘서’(恕)에 관한 유명한 언급으로, ‘서’로 설명되는 ‘인’(仁)의 의미는 추상적인 금언이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작용이다. 달마이어 교수는 이러한 ‘인’이 타인을 향한 개방성을 열어 놓을 수 있으며, 과거의 오류를 딛고 자기 고립이나 자기 찬양을 넘어서는 유의미한 어떤 것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한국의 동양학자로서 아쉬웠던 점은 달마이어 교수가 한국의 유교 전통이나 조선 성리학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서양철학을 한 평생 전공한 그가 ‘문명 간의 대화’를 위해 동양의 사상을 익히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열정과 관심, 문명들 간의 인간적인 대화를 시도하려는 노력은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공자, 한국의 유교

최근 중국은 공자(孔子)를 중국인의 상징으로 만들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을 다각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유교에 대한 최근의 논의들은 달마이어 교수가 지적했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게다가 달마이어 교수가 인용하고 높이 평가하는 학자들인 윙칫 찬이나 뚜 웨이밍은 현대 중국사에서 대단히 보수적인 전통에 속하는 학자들이다.

이들은 우리처럼 ‘동서’(東西-동양과 서양)를 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중서’(中西-중국과 서양)만이 있을 뿐이며, 특히 공자는 누가 뭐라 해도 ‘중꿔르언’(中國人)이다. 서양에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그리스인이라고 주장되지 않듯이, 공자와 그의 가르침인 유교 또한 중국인 학자나 중국 철학이 아니라 전 인류가 비판적으로 되새겨야 할 인류의 지혜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 현대신유가 학자들은 이 점을 간단하게 무시해 버린다. 중국의 공자와 한국의 유교는 이제 서로 무관한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인간의 진리와 보편적 가치에 국적이 있을 수 있을까?

저녁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달마이어 교수는 토론 시간에 질문을 퍼부었던 나에게 저만치서 살짝 손을 흔들었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꾸벅이며 답례를 보냈다. 그런데 그것이 제대로 된 인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계속해서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보내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고개를 꾸벅이며 답례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헤어질 때의 이 장면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내심 달마이어 교수가 유교에 대해 정통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그런데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깍듯하게 예로 응대하는 ‘공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서로 대등하게 만나며 악수하는 공자(孔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나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 혹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며 이렇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아마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유교와 공자는 그렇게 만나는 대화 속에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서양에서 온 공자를 만난 것이다.




김시천(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