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학기 북 심포지엄 - 너의 ‘곁’에 서는 것이 인문학
2012년 봄 후마니타스 북 심포지엄이 5월 29일 오후 3시부터 법학관 401호에서 열렸다. <인문적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개최된 북 심포지엄의 초대 저서는 『철학과 인문적 상상력』으로, 저자인 김상환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발제와 강연을 맡았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양연구소 소장인 이영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북 심포지엄은 참가자 전원의 깊은 관심과 호응 속에서 진행되었다. 건국대 영문과 김종갑 교수와 후마니타스 칼리지 중핵교과 서동은 교수가 지정토론자로 참석하였으며, 많은 참석자들이 질의에 참여하여 뜨거운 토론의 꽃을 피웠다.
심포지엄의 문을 연 이영준 교수는 김상환교수를 소개하면서 10년 전 이미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라는 책으로 탈근대사상을 정리하고 철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김상환 교수의 새 저서 『철학과 인문적 상상력』은 인문학계의 중요위치를 점할 것이라며 발제자와 저서를 소개하였다. 이에 답하듯 김상환 교수는 ‘인문학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후마니타스 칼리지에 초대되어 인문적 사유가 무엇인지 논의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이와 함께 오늘의 심포지엄이 깨알만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는 겸손어린 포부로 화두를 장식하였다.
너의 ‘곁’에 서는 것이 인문학
대중 가요 ‘Stand by Your Man’, 그리고 우리 동요 ‘나뭇잎 배’에는 ‘~의 곁’이란 말이 나온다. 이처럼 인문학은 대중 앞에 서거나 군림하기보다는 ‘인간 곁’에 서야 한다는 명령이다. 또한 인문학은 상상력의 차원에서 사물 옆으로 비스듬히 서 있는 사지향(intentio)의 태도를 취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문학은 일차적인 주객관계에 대한 이차적 관계, 즉 반성적인 태도를 갖는다. 이 비스듬한 관점, 즉 사지향의 반성은 주체의 자기관계와 대상관계에 경사가 생길 때 생겨나며, 오류의 교정은 반성적 지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인문적 상상력이 구하는 것은 객관성과 함께, 그에 앞선 이러한 친근성을, 즉 인간성이다.
김상환 교수는 동요 <나뭇잎 배>의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의 ‘엄마 곁’을 예로 들면서, 아이가 엄마 곁에 누울 때 모든 것은 사지향의 관계 안에서 굴절되어 함축의미를 드러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아이의 반성적 내면성은 바로 이런 누군가의 ‘곁’에서 자라나게 되며, 이것이 새로운 관계, 즉 감응하며 조응하는 친밀성의 관계에 놓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이는 심리적인 기재가 아니라 존재론적 정서로서, 그 ‘곁’이란 후설 식으로 말하면 모든 종류의 운동과 정지가 현상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어떤 절대적인, 객체화할 수 없는 ‘여기’, 친근한 여기이며 너무나 가깝고 내밀해서 모든 여기를 넘어서는 여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엄마 곁’은 세계에 속하는 장소라기보다는 오히려 세계가 세계로서 나타나는 장소에 가까운 것으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 나오는 ‘스완 네 집 옆에서’ 또한 같은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인문적 상상의 언어 - 은유
헤겔에게 ‘인문적 주체’는 자기 내면의 궁극적인 물음에 정직하게 관계하기 위해 결국은 유아론에 빠져야 하는 주체이다. 그는 유아론적 중력 때문에 타자로 향한 시선이 굴절될 수밖에 없으며, 사물을 직시할 수 없다. 그로 인해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 인문적 주체는 시대정신의 맹아에 해당하는 사태 자체, 즉 상호주관적인 질서를 구조화하는 사회적 의제나 이념의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를 언어로 해석하자면 ‘은유’가 된다.
은유의 능력은 주체 고유의 내면에서의 깊이가 만들어낸 능력이며, 사지향의 능력이다. 이 유사성은 범주들 사이의 논리적 시선을 비켜감으로써 깊이를 만들어낸다. 또한 은유적 유사성은 차이를 배제하기 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며, 의미의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이런 점에서 은유는 의미의 함축적인 차원을 열어놓게 되며, 일상어에 숨겨진 친밀성을 드러낸다. 동아시아적 사유가 지닌 강점은 바로 이런 은유의 놀라운 능력이 존중받아 왔기 때문이다.
은유를 탁월한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저서는 『주역』이다. 『주역』은 ‘모든 사물은 서로를 마주 본다’ 는 뜻의 ‘萬物皆相見’(만물개상견)을 핵심적인 원리로 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물들은 상대를 마주 보는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한없는 굴절의 미로라고 할 수 있는 은유적 시선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은유적 시선에는 최초의 기울기를 가져오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것이 인간적인 내면성이다. 이는 말하자면 인간적 내면성은 다른 인간, 즉 타인 곁에 서야만 자기 고유의 차원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동요 <나뭇잎 배>는 인문적 상상력의 지평이 열리는 최초의 지점을 노래한다는 심오한 의미가 있다.
토론과 질의들
건국대학교 영문과 김종갑 교수의 질의 내용은 세 가지였다. 1) 삐딱한 시선이라는 은유가 과연 김상환 선생님의 의견을 다 담을 수 있을까? 2) 사지향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직지향까지 무너뜨리게 되지 않았나? 중간태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3) ‘Stand by Your Man’ 인문학이 구가해야 할 것으로 규정해버린다면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이어서 생태학적 물음이 포괄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후마니타스 칼리지 중핵교과 서동은 교수는 1)오늘날 인문적 상상력이 왜 필요하고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은 빠져있지 않은가, 2) ‘엄마 곁’과 관련하여 르네상스에서 고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왜 고전을 읽어야 하고, 고전으로 돌아갔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인가, 3) 칸트의 틀을 수용한 것은 지나친 추상화의 위험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4) 현실적인 접합지점이 부족하지 않은가? 퇴행현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등에 관하여 질의하였다.
객석 질문에서는 ‘실천적인 면에 있어서 논의 확장’, ‘회고적 시선을 동양에 돌리는 것이 여전히 동양을 과거의 것으로 보고, 서양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등에 관한 질문과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북 심포지엄은 아쉽게도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참여한 학생들은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경청하고 메모하는 모습을 보였다. 법학과 3학년 김유민 학생은 심포지엄에 참석한 소감을 묻자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웠으며, 비록 어렵긴 하였지만, 어려운 용어가 나올 때마다 더 지적 호기심이 솟아났다’며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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